[기고] 연구산업, R&D 생태계 혁신의 열쇠다
[경향신문]
지난해 9월 미국의 세계적인 컴퓨터 GPU 설계 기업 엔비디아가 영국의 프로세서 칩 설계 기업 ARM을 400억달러(약 47조원)에 인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금액이다. 1990년 설립된 ARM은 반도체 칩 설계 연구·개발(R&D)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의 95%가 ARM의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다. 이외에도 IQVIA(신약 개발 임상시험), SGS(검사, 시험 및 인증) 등과 같이 R&D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은 R&D 생태계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ARM과 같은 R&D 전문기업이 속한 ‘글로벌 R&D 아웃소싱 시장 규모’는 2018년 1733억달러(약 204조원)에서 2022년 2418억달러(약 28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기술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많은 기업이 불확실성 최소화, 비용 절감을 위해 R&D 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혁신을 위한 개방형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폐쇄적 R&D 관행이 고착화되어 있다. 중소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확보할 때 외부기관과 공동개발하거나 타 기업으로부터 획득하는 비율이 10% 미만이며, 기업 간 기술협력 순위(2018년 IMD 세계 경쟁력 분석) 또한 63개국 중 40위로 낮은 편에 속한다. 국가 R&D 투자 규모 100조원, 세계 5위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OECD 국가 대비 R&D 생산성이 저조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속 증가하는 국가 R&D 투자를 내실화하고 개방형 혁신을 통한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는 ‘연구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구산업은 R&D가 진행되는 전 과정에 연동되어 그 활동을 지원하는 산업이다. ARM과 같은 R&D 전문기업뿐만 아니라 R&D 과정 전후에 기획과 사업화 등을 지원하는 기업, 연구장비·재료를 개발하는 기업 또한 연구산업에 속한다. 그간 정부는 이공계지원특별법에 근거하여 연구개발서비스업으로 신고한 기업에 대해서만 지원을 해왔다. 연구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지속 증가하고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올해 4월 연구산업진흥법이 제정되었고 지난달 시행되었다. 법 시행에 따라 연구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전문연구사업자에 대한 신고제도와 연구장비 성능평가제도가 새롭게 도입된다. 또한 정부는 연구산업 진흥 기본계획 수립, 연구산업의 기술 발전 및 고도화를 위한 R&D 지원 확대, 연구산업진흥단지 조성 등을 통해 연구산업을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다. 국내 R&D 생태계 혁신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기술혁신 경쟁이 격화되면서 선진국은 외부 전문기업을 활용하는 R&D 아웃소싱을 적극 도입하여 개방형 혁신을 통한 R&D 생산성 향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우리는 이제 연구산업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R&D 생태계 혁신을 위한 연구산업 육성의 첫 단추를 채웠다. 그러나 R&D 투자 규모, 우수한 인적자원, 첨단산업 경쟁력 등 성장잠재력과 여건은 충분하다. 이에 국내 연구산업이 법제정을 계기로 새롭게 도약하여 양질의 과학기술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R&D 생태계를 혁신하길 기대한다.
하태정 STEP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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