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10] 도둑의 도리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2021. 11.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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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잘하는데 논리에 맞지 않고 믿음은 가는데 이치에 맞지 않고 용감하기는 한데 의리에 맞지 않고 법을 잘 지키기는 하는데 실상에는 맞지 않는 것,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이 네 가지다.”

‘여씨춘추’에 나오는 말이다. 내로남불이 판치는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공인(公人)과 ‘사이비 공인’을 잘 분간하려면 적어도 이 네 가지는 잘 갖춰야 할 것이다. 이 네 가지에 밝지 못하면 이른바 도둑놈의 도리에도 쉽게 미혹된다.

공자 시대에 도척(盜跖)이라는 큰 도둑이 있었다. 한번은 그 부하가 도척에게 “도둑에게도 도리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도척이 말했다.

“무릇 빗장을 걸어 잠근 문 안을 함부로 헤아려서 그곳의 재물을 알아맞히는 것은 (도둑의) 빼어남[聖]이고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감함[勇]이며 뒤에 나오는 것은 의로움[義]이고 도둑질하는 때를 아는 것은 지혜로움[智]이고 장물을 똑같이 나누는 것은 어진 일[仁]이다. 이 다섯 가지에 통달하지 않고서 능히 큰 도적이 된 일은 천하에 있은 적이 없다.”

한 열린민주당 의원이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을 접하고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광주의 피비린내가 여전히 진동하던 1980년대 초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어느 날 선생님들에게 ‘전두환을 쏘아 죽이겠습니다. 총 한 자루만 구해 주십시오’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말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정말 그랬다면 그런 정신의 절반만이라도 실천하는 삶을 살았어야 할 일이다. 586 특유의 모자라는 지성으로 언론인 윤리마저 내팽개치고 정치권에 진출했다가 부동산 투기로 지탄받으며 ‘흑석 선생’ 같은 별명으로 불렸고 다시 스멀스멀 비례대표를 꿰찬 비루한 정치인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도척의 말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의원은 적어도 빼어남[聖]과 지혜로움[智]은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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