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받자고 이짓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보험업법 내년 기약

전종헌 2021. 11. 2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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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권고에도 의료계 반발에 12년째 공회전
4000만명 달하는 실손보험 가입자 불편 지속
[사진 제공 = 연합뉴스]
"3만원 받으려고 병원에서 증빙 서류 발급하고 비용도 내고 보험사에서 또 보험금 청구 신청서 받아 출력 후 작성해서 또 팩스로 넘기고 심사 기다리고 이짓을 계속해야 하나요."(40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4000만명 가까이 가입할 정도로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소관 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또다시 좌절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대가 형성, 관련 5개 보헙업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이번에는 국회 문턱을 넘을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지만, 결국 의료계 반발에 사실상 해를 넘겨 다시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24일 국회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전날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상정했지만 논의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이 의료계 강한 반발을 의식해 시간을 갖고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피력한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보험소비자 불편 개선을 위해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권고한 뒤 12년째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실손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실손보험 가입자가 동의하면 의료기관이 진료 내용을 전산으로 보험사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실손보험 가입자는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현재처럼 별도 진단서, 소견서, 진료비 영수증 등을 발급할 필요가 없다.

보험소비자 입장에서는 절차적, 비용적 측면에서 모두 편의성이 높아지는 만큼 정부와 금융당국도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에 힘을 실어줬다. 보험업계도 의료기관의 비급여 항목 청구가 줄어 손해율 개선이 기대되는 만큼 찬성 입장을 내비쳤다. 소비자단체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법안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하지만 의료계 입장은 다르다. 핵심 먹거리인 값비싼 비급여 진료 현황이 그대로 노출되고 정부나 보험사가 이를 근거로 진료수가를 통제하는 상황을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 환자 의료기록 유출 가능성도 이런 주장을 펴는 이유다.

문제는 이같은 이해관계 때문에 애꿎은 4000만명에 달하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불편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실손보험금 3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직접 영수증과 진료명세서, 소견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 서류를 병원에서 일일이 발급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발급한 서류를 우편, 팩스, 이메일 등으로 보험사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보험사 심사 과정까지 감안하면 최소 5단계의 절차를 거쳐야만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보험사에 따라서 만약 서류가 누락되기라도 하면 이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련의 절차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일부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종종 실손보험금 청구액이 극히 소액인 경우 증빙 서류 발급에 따른 비용이 더 많기도 하며, 상당수는 보험금 청구를 아예 포기한다.

이런 사실은 각종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2018년 보험연구원이 실시한 보험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청구 불편 등으로 소액인 경우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다고 응답한 가입자가 90% 이상을 차지했다.

소비자와함께,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한국소비자교육지원센터 등 소비자단체들이 합동으로 올해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실손보험금 청구 관련 인식을 설문한 결과에서는 2명중 1명꼴로 "최근 2년 이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는 2015년 3월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청구를 포기한 금액은 30만원 이하 소액청구건이 95.2%였다. 이 설문조사는 20세 이상 최근 2년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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