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누명 옥살이서 풀려난 미 흑인 남성..잃어버린 43년 "분노, 그 이상의 감정"
[경향신문]
19세에 수감돼 62세에 석방
무죄 증명됐지만 보상 ‘0원’
“이건 정의가 아냐” 비판 일어
미국 미주리주의 소도시 캐머런에 있는 ‘서부 미주리 교정센터’에서 23일(현지시간) 휠체어를 탄 흑인 노인이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19세에 교도소에 수감돼 62세가 돼 풀려난 케빈 스트릭랜드였다.
스트릭랜드는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크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어떤 감정을 만들어낸 거 같다”면서 “기쁨, 슬픔, 공포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찾아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살인죄로 50년형을 선고받고 43년을 복역하다 최종 무죄가 확인돼 풀려나온 사내의 말과 표정은 담담했다.
이야기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캔자스시티의 한 주택에 침입한 4명의 무장 괴한이 집 안에 있던 3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신시아 더글러스(당시 20세)는 부상을 당했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경찰은 스트릭랜드를 체포했고, 더글러스는 경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그가 용의자 중 한 명이라고 지목했다.
스트릭랜드는 사건이 일어난 시각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으며, 살인 사건 소식은 텔레비전 자막을 보고 알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는 감형을 조건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플리바게닝도 거부했다. 하지만 19세 흑인 청년의 일관된 결백 주장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에선 12명의 배심원 중 유일한 흑인이 끝까지 스트릭랜드가 무죄라고 주장함으로써 의견불일치로 평결을 내리지 못했다. 2심에선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3건의 살인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로 평결했다. 판사는 스트릭랜드에게 감형 없는 50년형을 선고했다.
더글러스는 몇 년 뒤 증언 번복 의사를 밝혔다. 술과 마약의 영향으로 스트릭랜드를 용의자로 잘못 지목했다면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한 법률단체인 ‘이노션스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더글러스는 법정에서 자신의 증언을 번복할 기회를 못 갖고 2015년 사망했다.
스트릭랜드가 재심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잭슨 카운티 지방검사인 진 피터스 베이커 검사가 그의 사건과 재판을 검토한 결과 무죄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베이커 검사의 재심 신청으로 증거 청문이 열렸다. 더글러스의 유족과 친구들은 그가 사건 당시 경찰로부터 스트릭랜드를 지목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증언을 번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증언했다. 스트릭랜드 변호인 측은 당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용의자 2명이 후에 스트릭랜드가 아닌 다른 2명을 공범으로 지목한 사실도 강조했다.
청문을 진행한 제임스 웰시 판사는 “이런 독특한 상황에서 스트릭랜드에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의 신뢰성이 붕괴됐다”면서 스트릭랜드의 즉시 석방을 명령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잃어버린 43년에 대해 어떤 보상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AP통신은 미주리주에서는 DNA 유전자 증거로 무죄가 증명된 경우만 금전적으로 보상하기 때문에 스트릭랜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스트릭랜드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온 ‘중서부 이노션스 프로젝트’의 트리시아 로호 부시넬 사무국장은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CNN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해에만 129명이 옥살이를 하다가 무죄가 판명돼 석방됐다. 이들의 복역 기간을 합하면 1737년으로, 1인당 평균 13.4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셈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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