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서 - 김성칠 [김경식의 내 인생의 책 ④]
[경향신문]
민족과 국가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에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8·15 해방 전까지는 민족 내부의 노선 갈등이 문제였다면, 해방을 계기로 노선 갈등에 국가 갈등이 더해지게 되었다.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강대국과의 역학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76년, 6·25전쟁이 일어난 지 71년이나 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민족과 국가의 갈등 모습이 한 역사학자의 일기로 남아 있다. 저자 김성칠은 1913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28년 대구고보를 다니다가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복역했다. 1947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가 1951년(당시 39세) 고향 영천 집에서 괴한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역사 앞에서>는 1945년부터 1951년까지 6·25전쟁 발발과 북한 점령기의 체험, 수복 후 풍경, 1·4후퇴 전후의 모습, 부산에서의 피란생활을 거의 매일 장문의 일기로 기록한 것으로 사망 42년 후인 1993년 책으로 출간되었다. 본인의 사상적 성향에 대해서는 스스로 “역사적 필연성을 믿었으나 성격이 다부지지 못해서 온건한 학문연구자로 지냈음”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일기 곳곳에 남북을 떠나 민족에 대한 애정과 외세(미·중·소)에 대한 못마땅함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수복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피란을 가게 된 1950년 12월15일의 일기는 7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민족과 국가의 문제가 현재 진행형임을 알려준다. “미 대통령 트루먼이 UN군은 여하한 사태에 당면하여도 절대로 한국에서 철퇴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하여 모두들 얼마쯤 안도의 빛을 보인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서 마침내 외세를 끌어들이고, 그 결과는 외국 군대가 언제까지 있어주어야만 마음이 놓이지,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이 나라의 몰골에 술이라도 억백으로 퍼마시고 얼음구멍에 목을 처박아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이 질곡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김경식 고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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