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보행규칙.. 우측이었나, 좌측이었나

2021. 11. 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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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1905년 고종황제가 우측통행 첫 시행 조선총독부 日처럼 좌측통행으로 변경 2009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우측통행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위반하는 것이 도로교통법 8조3항 횡단보도 우측통행이란 얘기가 있다. 아마도 우측통행이 생활화가 안된 탓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우측통행이었다. 1905년 고종황제가 우측통행을 시행했다. 그러나 1921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처럼 좌측통행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2009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다시 우측통행으로 바꿨다. 좌측·우측 통행의 역사를 찾아 100년 전으로 떠나본다.

1897년 9월 16일자 그리스도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한성부에서 고시(告示)하기를 새문 밖의 길을 세 길로 나누었다. 행인과 우마복태(牛馬卜馱, 말이나 소로 실어 나르는 짐)가 같은 길로 함께 다니다 보니 서로 부딪쳐 상하고 걸릴 염려가 있어서다. 가운데 큰 길은 말이나 교군(轎軍,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들과 우마복태가 다니고, 좌우의 작은 길은 남녀노소 보행자들이 다니라고 하였다." 이 기사는 가운데 큰 길이 아닌 좌우의 작은 길로 보행자들이 우측통행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던 것이 1921년 10월 25일자 매일신보를 보면 달라져 있다. "오늘 조선총독부령으로 취체 규칙과 압록강 다리를 걸어 다니는 것의 취체 규칙 중 개정할 건을 발표한 바, 우측통행을 좌측통행으로 변경하고 오는 12월 1일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우측통행은 1906년 이래로 수십 년 동안 관습이 되어 불완전하나마 다소의 성적을 얻었고 (중략) 이 개정에 관하여는 상당히 조사 연구를 거듭하고, 또 교통 취체 상 가장 관계가 깊은 경기도 경찰부장도 지방 유지의 의견을 들어본 즉, 다수자의 의견은 모두 좌측통행을 하는데 일치하였으므로, 이에 당국도 다시 신중히 심의하여 개정을 한 까닭이라." 좌측통행을 총독부령으로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됐음을 기사로 전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12월 1일 좌측통행을 실시하기 전에 다양한 홍보활동을 벌인다. 1921년 11월 9일자 매일신보에 '전기 명멸탑(明滅塔)으로 좌측통행 선전'이란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 "12월 1일부터 실시될 좌측통행은 당국에서는 선전에 노력하는 중인바, 본정경찰서는 경극공회당(京劇公會堂)에서 선전 활동사진을 수일 동안 영사할 계획이요, 종로경찰서는 높이 35척 되는 2층 누각의 전기 명멸탑을 종로 십자로에 건설하고, 또한 흥행물의 광고 기치(旗幟; 깃발)에 '좌측통행'이란 문자를 넣고 시중(市中)의 중요한 곳에는 20여 매의 선전판을 세울 터이요, 당일은 비번 경관을 소집하여 대 선전대를 조직할 터이라더라."

같은 해 11월 27일자 매일신보에는 '압록강 철교도 좌측통행을 12월 1일부터 일제히 모두 시행'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12월 1일부터는 조선 전체, 즉 압록강의 철교 위까지 모두 같은 모양으로 좌편으로 통행할 터인 바, 이것을 알지 못하고 우편(右便)으로 통행하면 일일이 경관이 지도하여 좌편으로 통행케 하여, 만일 듣지 아니하면 상당히 처분을 받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이제 경관으로부터 지도를 받지 않도록 서로서로 주의하여 다소간 불편한 일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좌측으로 통행하여야만 할지라. 만일 경관의 지도를 받지 아니하면 통행할 길을 통행치 못한다 함은 국민으로 하여 큰 수치라 하겠다."

이러한 좌측통행에 대한 선전은 표어 공모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1921년 11월 30일자 동아일보의 '좌측통행 표어 당선'이란 제목의 기사다. "대구경찰서 주최로 좌측통행 표어 모집에 대하여 대구부 신정 177번지 배동특씨가 1등에 당선되었다는데, 그 표어는 '좌측은 공덕(公德; 공중도덕)의 정로(正路)'이라더라."

드디어 1921년 12월 1일 좌측통행이 공식적으로 시행됐다. 그 날 매일신보에 실린 '금일부터 주의하시오'라는 제목의 기사다. "오늘부터 통행은 왼편으로 하게 되었다 함은 그 동안의 여러가지 선전으로 일반이 다 아는 바이어니와, 아주 실시하는 날이 왔으므로 거리거리에 써 붙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력거, 자동차, 기타의 모든 수레와 심지어 전차에까지 울긋불긋하게 '왼편으로 가시요'라고 써 붙이고서 떠드는 폼이 경성 시내가 모두 왼편으로 쏠리는 듯하다. 그리고 더욱 주의할 것은 모든 일이 처음에는 서투른 것이요, 이번 좌측통행도 졸지에 실시하는 일이 얼마 동안은 교통사고가 훨씬 많이 날 듯 하니 일반의 주의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18년이 지난 1939년 좌측통행 상황은 어떠했을까. 그해 12월 2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해이한 교통도덕'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자. "서대문 경찰서에서 19일 오전 8시부터 11시,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서대문 네거리 로타리의 교통 상황을 조사하였던 바, 좌측통행을 무시하고 남과 부딪쳐가며 반대쪽을 걷는 사람이 106명, 차도로 빠져서 걸어가는 사람이 140명, 자전거나 구루마를 거리 위에 놓아 둔 사람이 44명, 도합 354명인데, 서대문 경찰서서는 이들에게 설유(說諭; 말로 타이름) 정도로 모두 돌려보냈으나, 앞으로도 이와 같이 교통도덕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디까지든지 온정주의로만 나아갈 수는 없으므로 처벌을 하겠다고 한다."

일정한 규칙과 약속이 있어야 서로 안전한 것이다. 갈등(葛藤)이란 말이 있다. 칡 갈(葛), 등나무 등(藤) 자다. 이것이 왜 갈등인가? 칡과 등나무는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것들인데,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각각 감고 올라간다. 이 둘이 중간에서 만나면 서로 오도 가도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갈등'인 것이다.

즉 갈등은 서로 바로 보는 방향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러니 좌측이든 우측이든, 그 방향이 보행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우측통행이든 좌측통행이든 뭐 그리 대수이겠나. 중요한 것은 준법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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