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왜 인권의 최전선에서 사라졌나

한겨레 2021. 11. 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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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 등 이외에는 기념식에 참가할 수 없는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 운영사무국에서 필자에게 보낸 안내 문구를 보고 놀랐다. 필자는 백신 접종 완료자이지만 백신 접종을 기준으로 행사 참여여부를 정하는 방역지침은 차별이다. ‘백신 패스’ 정책은 기저질환이 있거나 정부 정책의 공백으로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불리한 대우여서, 인권단체들은 정부에 우려의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한 바 있다. 정부가 ‘백신 패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적어도 인권 전담기관인 인권위는 다른 방침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위 기념식은 수백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도 아니고, 영화관람도 백신 접종을 요구하지는 않는데 굳이 이러한 방역지침을 만들었어야 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유지하고 환기만 된다면 감염의 위험은 낮다. 게다가 행사참석자의 전화번호도 아니고 주민번호까지 요구하는 개인정보동의서를 보고 실망은 더 커졌다.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은 인권침해라고 권고한 인권위의 정보인권 기준에도 어긋난다.

인권위를 인권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관료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현병철 전 위원장은 6년 동안 정부 눈치를 보며 인권 현안을 외면했고, 인권을 중시한 조사관들을 징계했다. 그 뒤 인권위 직원들의 위원장과 정부 눈치보기가 체질화된 것일까. 인권보다는 승진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자조 섞인 내부 비판이 나올 정도다.

요즘 인권위 활동에선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외에 이렇다 할 인권 정책 추진도, 반인권 행정 감시도 보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 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쓴소리를 한 적이 얼마나 되나.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선 올해 1월22일부터 군이 매주 2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공사 재개를 위한 장비 반입을 시도하고, 이를 막으려는 주민들에 대한 경찰 폭력이 난무했지만 감시활동을 하지 않았다. 인권위 진정도 했지만 조사나 의견 표명도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회적 소수자가 배제와 차별을 겪고 있고, 정부가 집회금지 등 행정권력을 남용하고 있지만 인권위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발표조차 없다.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소외받는 인권의 마지막 은신처,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거침없이 인권의 원칙을 말하는 인권위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 도입 권고, 이라크 파병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 중 사망한 농민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2008 광우병 의심 쇠고기 반대시위 중 벌어진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등 인권 현안의 최전선에서 인권활동가들과 함께했던 인권위는 없다. 스포츠 분야 인권보호체계 개선을 위한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등에 대해 직권조사를 한 뒤 전원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스포츠계 환경과 구조를 바꾸기 위한 독립적 기구 설치 등을 권고하기로 의결하고도 6개월이나 끌다가 권고가 아닌 의견 표명으로 낮춰 발표하려다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사이 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가 사망했다. 권고를 이유 없이 지연시키거나 민감한 개인정보가 있는 사안이 아님에도 해당 안건을 비공개 안건으로 상정하는 등 인권위 조직 운영의 비민주성, 불투명성도 드러났다.

인권위가 인권의 현안으로부터 멀어진 데는 인권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나 인권단체들과의 협력·소통이 없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국제인권기구가 인권단체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현장 상황을 잘 알 수 있고 적절한 인권정책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시민사회 협력은 연 2회 하는 형식화된 시민사회 간담회 정도다. 얼마 전 간담회에서 인권단체들이 인권위 업무계획의 부실함을 성토한 이유도 인권위의 인권 현안에 대한 무관심, 그 바탕이 된 관료화 때문이다.

인권위의 제자리걸음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2017년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권고 수용률 확대를 말했지만 변화가 없다. 인권위 예산이나 인력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도 미진하다. 인권위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 개정은 논의조차 없다. 11월25일, 인권위 출범 20주년이 초라해진 현재, 새로 취임한 위원장은 과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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