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본 아동학대 정책의 현주소

한겨레 2021. 11. 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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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비극']우리가 아이를 구해야 하는 이유 연쇄기고_2

[왜냐면] 김민정|안산시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아동학대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아동학대 신고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6천여건이었는데, 올해는 9월에 이미 1만9천여건을 기록했다.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어른들이 필요하다. 학대 현장에서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는 경찰과 공무원, 학대 피해 아동의 회복을 돕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과 쉼터의 사회복지사, 가정에서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아동을 돌봐줄 위탁가정 부모가 그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어른과 전문가는 언제나 부족하고, 아동학대 예방과 대응을 위한 체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고 살리는 일, 아동학대 정책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전국 각 시군구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229개의 시군구 중 채 50%도 안 되는 71곳만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두고 있다. 복지관이나 건강가정지원센터와 같은 사회복지시설은 적어도 관할 시마다 하나씩 있지만, 아동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하나도 없는 곳이 많다. 아동보호전문기관 한곳에서 챙겨야 할 지역이 관할을 벗어나 넓다 보니 신고를 받고 빨리 출동을 하려 해도 이동 시간만 한시간 이상 걸리게 된다. 상담사가 사례 관리를 위해 가정을 방문할 때도, 아동이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도 대중교통으로 한두시간 이상 걸리기 일쑤다. 또 국가에서 지원하는 학대 피해 아동의 치료와 보호를 위한 사업예산은 아동보호전문기관 한곳당 2732만원이다.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안산시는 학대 피해 아동 발견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지난해 총 1515건의 아동학대 사례가 발견됐다. 아동학대 사건 한건당 1만8천원의 비용으로 학대 피해 아동의 후유증 치료와 지원을 한 셈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학대 피해 아동의 학대 후유증을 감소시키고 학대 행위자의 양육 태도를 개선시키기 위한 상담과 교육이 진행된다. 모든 아이들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의 한계가 있는 만큼 위기가정이나 고위험가정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일부만 심리치료를 받거나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산시의 경우 대략 16%의 학대 피해 아동 가정만이 심리치료를 제공받고 있다. 심리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상담원이 꾸준히 가정을 방문해 심리치료에 가까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상담원의 역할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 된다.

무엇보다도 아동학대의 사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의 수는 너무도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해 1인당 맡고 있는 사례는 많고,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대면상담은 현실적으로 시간이 없다. 진행 중인 사례와 사후관리 사례를 포함해 상담사 1인당 전국 평균 약 76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말인즉 이달에 만나야 하는 가정이 76곳이라는 의미다.

업무의 어려움도 크다. 학대 행위자에게 욕설이나 폭언을 듣거나 만남 자체를 거부할 때도 있다.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양육자가 거부하더라도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는 중압감도 심하다. 매번 학대 행위자들과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피곤함과 업무의 부담으로 채 1년을 버티지 못하는 상담원도 많다.

실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잦은 변경으로 학대 피해 아동은 “아빠한테 맞은 것에 대해 또 선생님한테 말해야 돼요?”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이러한 가슴 아픈 사연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학대로부터 고통받은 아이들의 상처를 상담원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로 보듬고 치유해줄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정부는 올해 아동보호전문기관 10곳과 학대 피해 아동 쉼터 29곳을 추가 확충하고, 전국 229개 시군구에 664명의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동학대 인프라 개선 계획에 대한 예산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이다.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학대 피해 아동과 가정의 회복을 지원할 충분한 예산과 시군구마다 아동보호기관 설치, 아동보호 체계에서 일하는 전문가 확대 등이 시급하다. 특히 시민들이 정책 캠페인 등으로 뜻을 모아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이들을 아동학대의 위험에서 구하고 아동의 권리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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