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출근 아리랑TV 작가 "필요할 땐 직원, 불리할 땐 프리랜서"

김예리 기자 2021. 11. 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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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출근하며 지시 따라 기사작성·녹음, 계약 없는 업무수행도
지노위 노동자성·부당해고 인정, 중노위서 뒤집혀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아리랑TV(사장 주동원) 지휘 아래 매일 출퇴근하며 6년 간 일한 '무늬만 프리랜서' 작가가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에 나섰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해당 작가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사측의 계약 해지를 부당해고로 판정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뒤집고 회사 손을 들어준 상황이다.

아리랑TV 시사보도제작센터 소속으로 일하다 계약이 일방 해지된 방송작가 박윤서(가명)씨는 지난달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퇴직금 청구 구제신청을 접수시켰다. 박씨는 “회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리랑TV에서 보낸 6년이 부정 당하는 것 같았다. 노동위 조사 중 복귀할 마음이 사라졌지만 퇴직금까지 청구한 이유”라고 했다.

박씨는 2015년 1월부터 만 6년 매일 아침 서울 서초구 아리랑TV에 출근했다. 그는 아리랑TV가 방송하는 10시 뉴스와 12시 뉴스 프로그램에 쓰일 기사를 작성했다. 개수와 내용, 형식은 아리랑TV 측 지시에 따라 날마다 달랐다. 시사보도센터장과 PD가 지시할 때마다 영어 자막, 정규직 기자가 쓴 리포트 녹음, 기자 자막 교육 등 업무를 수행했다. 모두 계약서엔 없던 일이다. 회사가 따로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업무이기도 하다.

6년 간 정시 출퇴근 기록… 회사는 “박씨가 원해서”


아리랑TV 측은 채용할 때부터 그를 '직원'으로 대했다. 아리랑TV는 작가 모집 “전형 일정”으로 서류와 필기시험, 1차면접과 최종면접을 실시했다. 이를 통과한 박씨는 두 달 간 수습 기간을 거쳤다. 담당 PD는 기사 작성법과 영상편집하는 방법, 회사 프로그램(ANS) 사용법 등을 교육했다. 이 기간 월급은 50% 깎였다.

출근은 9시 이전에 했다. 퇴근은 '오후 3시 이후'였다. 정해진 업무를 마쳐도 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와보세요.” “윤서씨, 잠깐만 (와 봐)” PD와 박씨의 카카오톡 대화록엔 수시로 자리로 부르는 메시지도 여럿이다. 박 작가는 “담당 PD 등은 잠깐 늦으면 바로 어디인지를 묻고, 자리로 오라 지시해서 상의하는 일들이 당연했다”고 털어놨다.

▲박윤서씨 바이라인으로 작성돼 보도된 아리랑TV 리포트 방송 화면. 박씨는 아리랑TV 기사 작성과 녹음, 영상편집을 맡았다. 사진=아리랑TV 홈페이지
▲박윤서씨가 자신의 바이라인으로 작성한 아리랑TV 기사 일부 갈무리. 사진=아리랑TV 홈페이지

“이거 써주세요.” “이거 단신 (써 줘). 둘 다 연합 기사.” PD와 대화엔 PD의 지시도 수두룩하다. PD가 수시로 국내 기사 링크와 함께 '단신' 또는 '리포트'를 주문하면 박씨가 영문 기사를 작성했다. 분야는 대선 경선 같은 정치 보도부터 코로나19 확진·백신 소식, 국내 트렌드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았다. 박씨가 기사를 써 넘기면 원어민 에디터 교열을 거쳐 데스크가 내용을 확정했다. 박씨는 이에 따라 영상을 편집하고, 리포트 오디오를 녹음했다. 원고 녹음 마지막에는 “박 윤서”라는 바이라인이 달렸다.

“아리랑TV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내근하는 기자들과 업무 방식이 다르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기자들도 연합뉴스 등 기사를 기반으로 영문 기사를 작성했어요.” 박씨 이후 입사한 기자들은 그를 '선배'라 불렀다. 그도 먼저 일한 아리랑TV 직원들을 '선배'라 했다. 정규직 기자와 업무가 뒤섞이기도 했다. 데스크가 박씨가 쓴 기사를 보고 '이건 추가 취재를 해봐야겠다'며 기자에게 넘기는 식이다.

▲아리랑TV 작가 박윤서씨와 정규직 PD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기록. 담당 PD는 업무 중 수시로 박씨를 자리로 불러 협의했다고 한다.

녹음부터 회의, 자막까지… 회사 지시에 추가업무 일상


계약에 없는 추가 업무도 일상이었다. 담당 PD가 지시하면 주말용 기사를 추가로 작성했다. 오후 5시에 쓸 기사도 수시로 지시 받았다. 수당은 없었다. 박씨는 “일이 일찍 끝나면 3시까지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지만, 업무가 많아 퇴근이 늦어지면 회사는 '프리랜서이니 상관 없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끝내라'는 식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 국면엔 방역당국 브리핑 실시간 영어자막도 박씨 몫이 됐다. 지난해 4월부터다. 본래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센터장은 박씨에게 정규직 기자 자막 입력 교육을 맡겼다. 그러나 실시간 영어자막에 오타가 지속되자 박씨가 자막을 전담하게 됐다. PD 지시로 10시 뉴스 생활정보 코너 회의에 참석해 아이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규직 기자가 쓴 리포트 녹음도 대신했다. '오디오'가 겹친다는 이유다.

박씨는 “(아리랑TV는) 필요할 때는 직원처럼 일을 시키고, 불리할 때에만 '프리랜서'란 표현을 적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는 그가 일하기 시작한 뒤 4년 가까이 서면 계약서를 쓰지 않다, 2018년 9월부터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올초까지 약 2년 4개월간 쪼개 쓴 계약서는 10건이다.

▲ 아리랑TV 담당 PD가 박윤서씨에게 추가업무(기사와 자막)을 지시한 대화 기록.

“추가 업무 줄인다고 보수 줄이나” 항의, 마지막 계약 됐다


박씨가 회사 지시에 문제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가 추가 자막업무로 맡아왔던 코로나19 브리핑이 지난해 6월 축소됐다. 사측은 그러자 기존 계약서상 근무 시간과 급여를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박씨는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담당 PD에게 “15시 기사 업무도, 11시 브리핑 자막도 계약서에 없는데 몇 달 동안 그냥 업무를 받았다. 일을 더 주실 땐 명시를 안 하시지 않나. 그런데 조금 줄면 계약금도 바로 줄여야 되나”라고 말했다. PD는 “법적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알려주겠다”고 했고, 급여 축소는 없던 일이 됐다. 박씨에 따르면 PD는 그해 계약 기간이 끝나가던 지난해 12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박씨는 지난 1월11일부로 아리랑TV와 계약이 해지됐다.

서울지노위는 지난 5월 회사가 △기사 내용과 주제를 구체적으로 지시해 지휘·감독하고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했으며 △뉴스 개수가 아닌 근무 시간에 따른 고정급여를 지급하고 △박씨의 전속성과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박씨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이며 아리랑TV의 계약해지는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노동자 인정 범위 넓어지는데…지시 수두룩해도 “박씨 재량”


그러나 중노위는 이 같은 판단을 뒤집고 아리랑TV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리랑TV는 박씨가 장기에 걸쳐 '건별 지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지휘나 감독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회사는 정시 출퇴근을 지시한 적 없고 박씨가 원해 정해진 시간과 자리에 출퇴근했다고 했다. 그 근거로는 박씨가 일한 6년 간 4차례 오후 2시대에 퇴근한 기록을 제시했다. 중노위는 수습 교육도 사용자의 규율 징표가 아니라는 회사 주장을 수용했다. 중노위는 '박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부당해고도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는 “중노위 위원장은 심판 회의에서 내게 '너에게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메리트가 있지 않았느냐', '본인도 좋아서 그렇게 근무한 것 아니냐, 불리하다면 왜 했느냐'는 식으로 물었다”고 전한 뒤 “내가 강하게 항의하거나 회사 지시를 위반하면 계약이 해지되지 않았겠느냐. 실제로 항의하다 계약이 해지되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MBC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부당해고 사건을 대리한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MBC는 중노위에서 작가들의 업무가 (노동자로 인정된) '뉴스후' 프리랜서 PD에 비해 간단하다며 노동자성을 부정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방송계의 유기적인 협업 구조에 기반해 노동자 인정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며 “방송 스태프와 '무늬만 프리랜서'들에게 100% 적용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이 기준에서 회사의 지휘·감독 여부와 업무수행 방법을 볼 때 아리랑TV 작가 역시 노동자성이 명백해 보인다”고 했다.

아리랑TV는 미디어오늘에 “박씨가 계약 종료 이전 본인 스스로 계약 연장 의사가 없다고 의사 표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아리랑TV는 박씨의 '프리랜서' 근무 형태에 대해선 “출퇴근시간이 고정됐다고 주장하나 업무수행시간은 특정되지 않았고, 초과근무 지시는 없었다. 구체적 업무지시도 없었다”며 “수습 교육은 방송국 특성에 따른 품질 향상을 위한 교육으로 정규직원이 받은 것과 달랐다”고 밝혔다.

아리랑TV 측은 또한 “계약서상 프리랜서 기사 작성 업무는 리포트 1개, 단신기사 3개로 돼있고 실제 업무도 매일 그 범위 안에서 동일하게 이뤄졌다”고 했다. 이어 “모두 계약서에 있는 업무로 계약된 금액을 정상 지급했고, 따로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업무를 지시한 적 없다”며 “주말용 기사의 경우 계약서에 있는 '1일 리포트 1개 단신 3개'의 일부를 주말용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아리랑TV와 박씨가 맺은 업무위탁·집필계약서를 보면 하루 업무량(리포트 1건, 단신 3건)을 명시한 대목은 없다. 다만 12시 뉴스 꼭지 1건 당 10만원, 10시 뉴스 1건 당 4만원을 적시했다. 자막이나 다른 기자의 기사 더빙도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

아리랑TV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명확히 리포트 1개 단신 3개라 적혀 있는 내용은 없을지라도, 박윤서씨가 계약서를 10시와 12시 각각 2건을 작성했다는 것은 이에 대한 단가 확정이 있었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 제작비에 한도가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아리랑TV 측은 “'생활정보' 코너 회의의 경우 약 3~4개월 운영했는데 PD 회의에서 아이템을 정하고서 디테일한 내용들을 위탁계약에 따라 작성 요청하기가 좀 번거로운 점이 있어 회의에 참관시켰을 뿐”이라며 “코너 안에 들어가는 패키지 아이템을 추가비용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작성할 것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3일 오전 9시 아리랑TV 입장 추가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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