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는 '청년'은 누구입니까[플랫]
[경향신문]
청년 활동가의 이름으로 살지만 모든 청년의 삶을 알지는 못한다. 내 이야기다. 나이는 30대 초반,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스무 살 이후로는 서울에 살지만, 내 집은 가져본 적 없는 캥거루족이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뭐 잘난 신상이라고 줄줄이 말하고 있나 싶지만, 겨우 몇 개의 객관적 지표가 말해주는 정형이 있다.
서울에 사는 것만으로 나는 평균 이상이다. 또래 청년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4년제 대학 졸업자, 정규직 노동자 위주의 삶을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저소득 노동자, 여성, 세입자로 살아가는 내 약자의 경험을 교차시킨다. 끊임없이 여러 당사자 상을 떠올려야만 청년의 복잡한 세대 정체성을 되새길 수 있다. 30대 청년인 나조차도 청년의 삶을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데, 정치가 정의하고 호명하는 ‘청년‘은 누구인가.
청년을 만나려고 전국을 순회하고, MZ세대에게 ‘민지’라는 호칭도 붙였다. 그런데도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한 공약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청년 공약으로 무고죄 처벌 강화를 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여당의 전략 실패로 분석하는 인터넷 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두 후보 모두 여성가족부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지난 5년 동안 여성 청년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였던 성평등의 가치가 좌절된 선거 레이스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비단 여성 청년만의 좌절이 아니다. 역차별, 차별 등의 메시지 아래에 깔린 청년 삶의 곤경에는 전혀 관심 없는 듯한 태도가 좌절의 이유다. 그동안 청년이 소리 높여 바꾸자 말한 것은 내일을 꿈꿀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 불안에 대한 분석 없이 내놓은 양성평등 공약은 허상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난주 목요일, 대선 후보들에게 ‘진짜’ 청년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전국 30여개 청년단체가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신이 보는 청년은 누구입니까?” 묻기 위해 청년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중에는 중학생 때부터 생계를 위해 일을 한 청년도 있었다. 10대부터 일을 하느라 스펙도, 전문성도 없어 고소득 전문직이 되지 못했다. 기반이 없어 처음에는 도보로, 이제는 전기자전거로 하루 8시간 이상 배달을 하다 허리디스크를 진단받았는데도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 불안정한 삶에, 지금 정치가 소리 높여 말하는 공정과 젠더 갈등이 끼어들 틈은 있을까. 이 모든 불안의 면면을 정치는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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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열심히 말을 걸고 있는 청년은 누구인가. 이제 청년 앞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기자회견에서 함께 읽은 글에 언급된 청년의 다양한 이름을 인용하며 이 글을 끝낸다.
“대학생, 비대학생, 취업준비생, 계약직, 정규직, 비구직니트, 청년 돌봄노동자, 장애인, 비장애인, 경계성 장애 청년,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 사회초년생, 학자금 대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 비혼자, 기혼자, 임대인, 임차인, 남성, 여성, 성소수자, 모두 청년의 얼굴입니다. 이 외에도 말해지지 않은 청년의 얼굴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의 삶도 살펴보지 않은 채 공정의 발판을 닦겠다는 정치의 언어는 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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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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