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누굴 위한 검찰개혁이었나

윤주헌 기자 2021. 11. 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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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이날 검찰은 대장동 개발 로비, 특혜 의혹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를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전담수사팀이 수사를 시작한 지 54일 만인 22일 내놓은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성격의 보도 자료는 예상을 넘게 초라했다.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화천대유 측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나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성남시 등 ‘윗선’의 개입 여부 등을 규명하지 못했고, 2014년 성남시장 선거 전후 대장동 일당에 전달됐다는 43억원의 종착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한 편의 희극(喜劇)을 연상케 한 이번 수사는 검찰의 현주소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대장동 수사를 통해 국민들은 무능한 검찰의 모습을 봤다. 사건 핵심 인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검찰 압수수색 전 창문 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졌지만 검찰은 끝까지 못 찾았다. 오히려 “압수수색 전후로 창문이 열린 사실이 없다”며 언론 보도를 ‘오보’ 취급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 휴대전화의 행방을 쫓은 지 하루 만에 찾아냈다. 검찰이 그동안 ‘안 찾은’ 건지 ‘못 찾은’ 건지 시간이 지난 뒤 물어보니, 관련 내용을 잘 아는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정말 못 찾았던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핵심 혐의인 뇌물 액수를 두고도 매번 말이 달라졌다. 유 전 본부장 구속영장에는 김씨에게서 5억원을 받았다고 했다가, 정작 공소장에서는 제외했고 추가 기소하면서 다시 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5억원의 계좌 추적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영장에 넣었던 것이다. 검찰과 같이 팩트를 중시하는 신문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징계감이다.

수사팀의 무능력은 사기(士氣) 저하로 나타났다. 수사가 시작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부터 수사팀 내부에서조차 “특검이 수사를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이때 정해졌다. 지난 10월 국감장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수사팀에 대해 “저보다 훌륭한 A급 검사들”이라며 사기 진작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대장동 수사가 맹탕으로 끝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사 참사’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검찰은 간부 인사를 통해 요직에 ‘능력’이 아닌 ‘정치 성향’을 따져 임명했다. 특히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보직에 수사 경험이 적은 차장·부장검사가 임명됐다. 그 사이 이름난 ‘수사통’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밀려났다.

현 정권은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했다. 이번 대장동 수사는 그 결과물이다. 검찰 수사는 갈팡질팡했고, 정치권 눈치 보기에 바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은 발표 자료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이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수사를 못한 수사팀도 자괴감을 느끼겠지만 국민들은 더 속이 터진다. 누구를 위한 검찰 개혁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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