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칼럼]이번 대선에서 지켜내야 할 것

이중근 논설주간 2021. 11.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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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달 초 국민의힘이 문상부 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다시 중앙선관위원으로 추천했다는 뉴스를 보고도 그냥 넘겼다. 아무리 여야가 엇나가는 상황이라 해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발상이라 곧 철회되리라 예상했다. 여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인사청문회 후 표결 통과가 어려운 현실도 떠올렸다. 그런데 엊그제,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 준비 모임이 25일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약한 태풍이 엄습해오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중근 논설주간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그리고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으로 구성된다. 임기는 6년이다.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헌법 114조) “중앙선관위와 시·도선관위에 위원장을 보좌하고 사무처를 감독하는 상임위원 1인을 둔다.”(선관위법 6조) 이에 따라 선관위는 그동안 중립성을 강화해왔다. 정치권도 국회가 선출하는 3인에 대해 견제·균형의 정신을 적용해왔다. 여당과 야당, 그리고 여야 합의 추천 1명씩 청문회를 거쳐 임명해온 것이다. 다소의 논란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잡음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문 전 상임위원 추천은 이 룰을 뿌리째 흔들었다. 역대 이런 추천은 없었다.

문 전 상임위원은 선관위원이 되는 데 치명적 결점이 있다. 그는 상임위원을 끝으로 선관위를 떠났다가 올해 국민의힘 경선을 관리하는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당원이 됐다. 최근 탈당해 정당원은 아니지만 정치에 간여할 수 없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다. 문 전 상임위원은 “정당에 가서 보니 정치권이 선관위 중립성을 너무나 무시하더라. 그래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섰다”고 말하는 모양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 군색한 자기변명이다. 더구나 문 전 상임위원은 선관위에서 차관급인 중앙선관위 사무차장, 장관급인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을 잇따라 지냈다. 이제 와서 다시 장관급인 중앙선관위원을 하겠다고 나섰다면, 누가 자리 욕심이 아니라고 할까. 그의 추천에 선관위 직원들은 온통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또 국민의힘의 그의 추천은 완전한 자기모순이다. 국민의힘은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이 문 전 상임위원 후임으로 조해주 상임위원을 임명하자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을 강화한다며 관련 법안을 3개나 발의했다. 지난 7월에도 추가로 법안을 발의했다. 정당의 당원이었거나, 선거 캠프에서 일한 경우, 심지어 탈당한 뒤 3년 또는 5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까지 모두 중앙선관위원이나 상임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불과 석 달 만에 정반대로 뒤집었다.

문 전 상임위원이 무리인 줄 알면서도 나선 이유가 있다.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조해주 상임위원의 후임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여야 간 짬짜미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문 전 상임위원의 컴백을 받아주면 국민의힘도 문 대통령의 조 상임위원의 후임 지명을 용인하는 식이다. 이대로 된다면 여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겠지만, 차후 선관위는 정치 논리가 횡행하는 조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문 전 상임위원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여당 편을 노골적으로 들 상임위원을 임명하는 게 아니냐는 공포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시발은 선관위 국장 출신으로 2017년 ‘민주당 대선백서’에서 문 대통령 당선을 도운 것으로 기술된 조해주씨가 상임위원으로 지명된 것이다. 여권이 원죄 의식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최상의 해법은 문 전 상임위원이 자진사퇴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되면 민주당이 표결로 부결시켜야 한다. 그다음, 문 대통령은 조 상임위원의 후임 지명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직접 지명하는 대신 대법관처럼 후보추천위원회를 발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것도 못한다면 상임위원을 비워놓고 7인 체제로 가는 게 옳다.

이번 대선을 두고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한다. 여야의 두 거대 정당이 공약 경쟁은 없이 오로지 정권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4·15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거리를 누빈다. 극우보수 일각에서 이미 3·9 대선에 불복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공정한 선거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의심받는다면 대선 후유증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최소한의 절차적 가치라도 지켜내야 한다.

이중근 논설주간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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