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암중모색의 시대, 암중모색의 인물
[경향신문]
“손님 가시는 작은 골목에 쏟아지는 달빛, 귀뚜라미 우는 찬 섬돌마다 하얗게 내린 서리. 조식, 유정 같은 이들과 시대를 함께하니, 암중모색한들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김윤식이 벗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술자리를 가진 뒤에 지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조식과 유정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뛰어난 시인이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벗들이 떠나가고 달빛만 가득한 골목을 바라보며, 그들과 주고받은 시심(詩心)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더듬어 찾을 수 있을 만큼 빼어난 시 벗들. 이런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밤이다.
유래와 멀어진 뜻으로 통용되는 성어들이 제법 있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은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는다는 뜻으로, 주로 어림짐작한다는 의미, 혹은 은밀하게 해결책을 찾아내려 시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하는데, 유래가 되는 고사는 이렇다. 당나라 때 허경종이라는 오만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을 보고도 곧잘 잊어버리곤 했다. 왜 그렇게 기억력이 나쁘냐는 타박에 그는 답했다. “기억하기 어려운 자들이라 그렇지, 만약 하손이나 유효작, 심약이나 사조처럼 뛰어난 인물이었다면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더듬어서라도 기억할 수 있네.” 여기서 암중모색은 매우 뛰어난 인물임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위의 시가 바로 이런 유래를 살린 용례다.
누구도 명쾌한 해법을 제시할 수 없는 어두움이 계속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증 하나가 이렇게 전 세계를 혼돈 속에 몰아넣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1세기 첨단과학과 의료시스템에 의존해 봐도, 불빛 없는 밤에 지팡이로 땅을 더듬어 한 발 한 발 옮기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그야말로 암중모색의 시대다. 하지만 무언가 찾아가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는 점에서, 암중모색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다.
여기에 하나 더, 암중모색에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앞의 정치 현실을 보면 언감생심이긴 하지만, 도무지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가지는 바람이 꿈이다. 암중모색의 인물을 꿈마저 꾸지 못한다면 이 어두운 암중모색의 시대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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