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미래가 보이지 않는 대선 경쟁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21. 11.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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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선이 100여일 남았다.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들도 모두 확정되었다. 2년간 지속되던 전염병으로부터 심각한 타격을 입은 세계경제는 서서히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도 예상 밖의 선전을 하였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선진국은 회복세이지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내년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19가 할퀴고 간 상처로부터 회복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야 할 중차대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수요진작과 공급부양의 쌍끌이 경제전략을 구사하고, 평생역량 개발에 대한 투자와 적극적인 일자리 정책으로 빠르고 공정한 회복을 지향해야 할 시기이다. 자산불평등과 자산양극화의 폐단을 줄여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금의 대선 경쟁을 보면 희망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전개과정만 놓고 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대선 경쟁이다. 국민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인 듯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과 윤석열에 대한 비호감도는 전자가 63%, 후자가 56%이다. 국민들의 60% 정도가 두 후보를 모두 비호감이라고 답한 것이다. 호감도는 30%대에 그친다.

통상 선거에서는 인물, 구도, 프레임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인물은 보이지 않고 구도와 프레임만 돋보인다. 인물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대선 후보들이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에게는 ‘대장동 의혹’과 ‘품위 없고 거친 언행’ 등이 문제이다. 윤석열에게는 ‘고발 사주 의혹’과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리스크’가 있다.

인물이 사라지면 거짓과 막말과 네거티브가 난무한다. 미래비전과 정책 경쟁은 뒷전이고 ‘내로남불’과 ‘프레임조작’이 다반사가 된다. 상대방이 더 비호감이라며 상대방을 향해 삿대질과 흠집내기를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후보 배우자의 낙상사고나 다른 후보 배우자의 난임과 같은 타인의 불행을 선거에 악용한 것은 악질적이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여러 차례 등장한 포퓰리즘 정치의 망령이 우리나라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포퓰리즘은 국민으로부터 멀어진 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기 쉽다. 포퓰리스트들은 표면적으로는 ‘반기득권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새로운 정부’를 내세우지만, 국민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것은 자기들뿐이고 상대방은 기득권자라는 선악논리에 집착한다. 포퓰리스트들에게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은 국민의 일부가 아니다. 포퓰리스트는 말한다. “우리가 국민이다. 너희는 누구냐?”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에서 보듯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이 ‘편파적 언론’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핍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스트들은 ‘주권자들의 의지실현’을 목표로 하지만 ‘후견주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추종자들에게는 이런 것들도 진정한 국민과 주권자를 위한 일로 간주된다.

포퓰리스트들이 내세우는 정책은 실상 무책임한 정책인 경우가 많다. 일산대교 폭리를 주장하며 무료화를 강행한 여당 후보의 정책을 보면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부르주아지의 기생충들’이라면서 병사들을 상점에 보내 상품에 낮은 가격표를 붙이게 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가 연상된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통화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활용할 것이다. 종부세 폭탄론을 주장한 야당 후보도 도긴개긴이다.

민주주의에 내장된 이중성은 주기적으로 포퓰리즘의 망령을 불러낸다. 민주주의는 일상적으로는 정치인·관료 등 전문가 집단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지만 동시에 선거라는 대중의 직접 참여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과 작동 근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벤하민 아르디티가 “저녁만찬에 초대된 술 취한 손님”에 비유한 포퓰리스트를 막으려면 국민들이 민주주의라는 만찬장에서의 예절을 잘 규정하고 감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포퓰리스트적 정책에 대해서는 싸늘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여야의 최근 행태를 보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 서로 패를 나누고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이나 정서에 근거해 증오와 복수의 정치로 상대방을 공격할 기세이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상대방을 바로 감옥에 집어넣을 기세다. 이런 식의 정치·사회적 퇴행이 진행될 경우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분열이 심화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래와 공존과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적 경쟁을 보고 싶다. 대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집단지성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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