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건 호통 뿐..전두환,사과는 없었다
[앵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애도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건, 전두환 씨가 국민들에게 사과 한 마디도, 반성의 말 한 단어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어서, 안다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회고록 내용이 문제가 돼 재판을 받기 위해 32년 만에 광주를 찾았던 전두환 씨.
과오에 대한 사과 요구에 돌아온 답은 호통이었습니다.
[전두환/2019년 3월 :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 이거 왜 이래! (광주 시민들한테 사과할 생각 없으세요? 사과할 생각 없으십니까?)"]
전 씨 태도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전두환/2020년 11월 : "(대국민 사과하세요!) 말 조심해 이놈아!"]
퇴임 후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자 백담사로 가면서 한 대국민 사과.
친인척 비리는 사과했지만 5.18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에 대해선 비극적인 결과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 딱 거기까지로 그쳤습니다.
[전두환/1988년 11월 : "우리 민족사의 불행한 사건이며, 저로서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1년 뒤,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5.18 발포 문제가 자위권 행사로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되풀이했습니다.
[전두환/1989년 12월 : "유독 광주에서만 그러한 비극이 발생했던 이유는 악의에 찬 유언비어에 자극받은 일부 시민들의 과격 시위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1995년, 내란 등의 혐의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을 때는 집 앞, '골목 성명'에서 색깔론을 꺼내기도 했습니다.
[전두환/1995년 '골목 성명' :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 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12.12와 5.18 등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법적 책임이 인정됐을 때도 역시 사과는 없었습니다.
2003년 언론 인터뷰에서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폭동'이라 부르며 계엄군 진압을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28일 전,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가족을 통해서나마 광주에 사과의 뜻을 전했고 그래서 죽음을 계기로 다른 평가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씨는 국민 앞에 사과할 마지막 계기에서도 끝까지 입을 닫았습니다.
KBS 뉴스 안다영입니다.
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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