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신춘문예 문 두드리는 '실버문청'들
지난 삶 자양분 삼아 글쓰기 진출
헤세도 긴 무명생활 끝 노벨상 받아
좌절 말고 시·소설 쓰며 힘 얻기를
빨간 단풍이 낙엽이 되고 찬 기운이 옷깃으로 스며드는 이맘때 언론사 문화부는 신춘문예로 분주하다. 한 해 동안 글밭을 가꿔온 문청(文靑)들의 원고 제출과 문의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다음 달 초순인 마감이 다가오면서 응모자들의 문의로 부서 전화통은 불이 난다. 해마다 이즈음 전화를 해오는 이가 있다. 전직 공무원인 60대 중반 여성이다. “정년 후에 시의 세계에 눈을 떠 열심히 필사도 하고 창작교실도 다니며 시를 쓰고 있다. 5년간 응모했는데 번번이 낙방했다”고 한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한숨이 깊다. “나이 든 이는 뽑지 않나. 심사위원들이 젊은 작가를 선호하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달리 할 말이 없어 “열심히 쓰시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나 마나 한 위로를 건넸다.
특별한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등산이듯,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바로 할 수 있는 예술 분야가 문학이다. 누구나 평범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자신의 지나온 삶과 주변, 경험들이 충분히 작품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글재주가 있는 이는 누구나 퇴직 후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더 열정을 지닌 이는 한발 나아가 등단이라는 문학적 성취를 통해 독자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하나 등단을 통해 꿈을 이루는 이는 극소수다. 대부분은 수년을 해도 신년호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절망한다.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 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헤르만 헤세는 ‘편집부에서 온 편지’를 통해 시업의 어려움을 이같이 토로했다. 이 시를 쓴 19년 후인 69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30년 무명생활이었다. 십대에 이미 시인 이외엔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결심했던 그였지만 나이 쉰이 되도록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맡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 준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작품을 거절하는 편지를 매일 받으면서도 혼자만을 위한 시를 쓰며 자신을 달랜 문호가 헤세다. 신춘문예 마감이 코앞이다. 실버문청들이여! 헤세를 통해 위안과 힘을 얻기를 바란다.
박태해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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