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이 된 당신의 '생명나눔' 기억할게요"

박주영 기자 2021. 11. 2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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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전국 첫 장기기증 유족 예우 행사
부산시와 한국장기기증협회가 23일 오후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연 '뇌사 장기기증자 유족 힐링 캠프'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이 분들은 하늘의 별이 되어 지금도 수많은 환자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23일 오후 6시35분쯤 부산 해운대구 중동 파라다이스호텔 카프리룸. 고 정운달님, 고 윤창현님, 고 정철수님, 고 황해국님, 고 정안라님, 고 김상만님, 고 김채연님. 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박 시장은 “부산시민과 부산시는 여러분의 고귀한 사랑을 꼭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 자리는 생면부지의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간 부산권역 장기·뇌사 기증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 예우해주기 위해 마련됐다. ‘장기·뇌사기증자 및 유가족 예우를 위한 힐링캠프’. 강치영 한국장기기증협회장은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린 장기기증자를 기억하고 유족들을 초대해 위로하고 예우하는 자리를 만든 것은 전국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이 호명한 이름은 부산의 뇌사 장기기증자들. 고 정운달님은 1992년 부산 최초 뇌사기증자이고, 고 윤창현씨님은 2007년 27세 청년으로 9명의 새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 고 정철수님은 2011년 45세에 5명의 생명을 살리고 인체조직까지 내놓으면 거룩한 삶을 마감했고, 고 정안라님은 2016년 6명의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린 뒤 33년 간의 세상을 떠났다.

고 황해국님은 2020년 병마에 시달리던 4명에게 장기를 기증했고, 고 김상만님은 2020년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과 만성신부전증 환자 4명의 생명을 살렸다. 고 김채연님은 2020년 피어보지도 못한 22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져 장기와 조직 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다시 피어나게 했다.

이 자리엔 또 1993년과 2005년 자신의 콩팥 한 개와 간 60%를 전혀 모르는 남에게 내어주고 180차례에 걸친 헌혈증을 기증한 이태조 목사와 1983년과 1999년, 2003년 3차례에 걸쳐 백혈병 어린이를 위해 골수와 콩팥, 간을 기증한 김영옥씨, 2000년과 2003년 콩팥 한 개와 간 60%를 생면부지 타인에게 내준 권금산 목사 등 생체기증자 3명도 참석했다.

“나의 눈은 해질 때의 노을을…감추어진 사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나의 뇌 세포를 도려내어 말 못하는 소년이 함성을 지르게 하고…내가 부탁한 이 모든 것들을 지켜준다면 나는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장기기증운동 선구자이자 시인인 로버트 노엘 테스트의 시,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가 낭송됐다.

7명 뇌사기증자들의 생전 모습과 가족과의 단란한 한때를 담은 사진들이 동영상으로 6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비쳐졌다. 박 부산시장, 신상해 부산시의회 의장, 강 회장 등 3명이 좌석에서 일어나 뇌사기증자 유족들의 테이블로 건너가 “고귀한 나눔의 삶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전구 촛불의 불씨를 전했다. 그 불씨는 받은 사람의 옆으로 또 그 옆으로 퍼져갔다.

20년 전 이들 뇌사기증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아 새 삶을 살고 있는 한 참석자는 “봉사활동을 하며 기증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했다. 고 김채연님의 어머니는 “채연이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지만 아이의 각막이 다른 사람의 눈에 이식돼 살아서 보고 있고 채연이의 장기들이 생명을 살려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하니 많은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되더라”고 말했다.

찢어진, 조각난 신문지들이 스르르 모여 하트가 됐다. 쌓여진 신문 더미가 눈 깜짝할 새 3m 높이의 하늘로 가는 사다리로 변했다. 마술가 함현진씨가 마술공연을 했다. 함씨는 “찢어지고 조각나 세상에선 사라진 신문지들이 사랑의 하트가 되고 고귀한 나눔으로 세상을 떠난 가족을 만나러 하늘까지 이르는 사다리가 되는 상상을 통해 그들의 희생, 나눔, 사랑을 공감하고 공명하자는 마음을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들 뇌사기증자 7명의 숭고한 나눔과 고귀한 사랑의 뜻을 기리기 위해 23~24일 광안리 광안대교 미디어 파사드에 이들의 이름을 비추고 ‘부산의 일곱 영웅 생명나눔으로 하늘의 별이 되다’란 문구를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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