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독재자가 집에서 편안히 죽었다니 화가 치밀어"

강현석·이혜리·반기웅 기자 2021. 11. 2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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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죽음' 들끓는 여론

[경향신문]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모습. 전씨는 생전 5·18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5·18 능멸…조화 보내지 말라”
광주 시민사회단체들 ‘경고’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한마디 사과도 없이 숨진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장례를 정부가 예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전두환이 차가운 감방에서가 아니라 편안한 집에서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면서 “독재자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부끄러움”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광주는 전두환의 이 뻔뻔하고도 편안한 죽음에 분노한다”면서 “그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학살 명령 행위를 부정했고 5·18 당시 헬기사격의 증언자 조비오 신부를 사탄이라고 칭하며 5·18을 능멸했다”고 지적했다.

전씨 장례를 정부가 예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분명하게 밝혔다. 이들은 “법의 이름으로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한다면 현 정부를 민주주의 파괴 정부로 규정하고 투쟁할 것”이라며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조화조차 보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은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폭발하는 민중들의 민주화 열망을 총칼로 진압하고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학살자의 마지막이 병사라는 것에 대해 그저 애석할 뿐”이라며 “이제 단죄받고 사죄해야 할 전씨가 세상에 없어 더 이상의 법적 처벌은 실효가 없으니 남은 것은 역사와 산 자의 몫”이라고 했다.

양대 노총 “명복 빌지 않을 것”
모교 대구공고 “분향소 없어”
고향 합천, 애도·비판 ‘뒤숭숭’

한국노총은 “생존한 피해자들은 학살의 공포와 그 지옥의 순간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명복을 빌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전씨가 살았을 때 죗값을 묻지 못하고 사망으로 종결짓는 것이 너무나 한스럽고 치욕스럽다”며 “정부는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사망한 전두환에 대한 어떠한 예우도 검토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전씨가 졸업한 대구공고는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대구공고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교내에 분향소를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코로나19 방역 및 학생 보호 등의 목적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씨 고향인 경남 합천군 일대에는 애도와 비판이 뒤섞인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격한 반응이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전두환에게는 별세나 서거라는 말이 아깝다”며 “솔직히 사망이라는 단어도 아깝다. 죽음이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전씨 생전에 왜 책임을 더 집요하게 그에게 묻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전씨 스스로 사과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역사를 청산했어야 한다”며 “전씨에게 험한 말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시민사회 모두 왜 그를 자연사하도록 내버려뒀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이혜리·반기웅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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