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언어탐방] 빵: 몸을 위한 양식, 혹은 일상
김용석ㅣ철학자
빵이란 무엇인가? 요리 대중화 시대에 제빵도 한몫하고 있는데, 이런 무례한 질문에는 무뚝뚝이 사전의 정의를 들이밀 수도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는 “곡물 가루나 밀가루에 수분을 더해 반죽을 치대어 구운 ‘잘 알려진’ 음식의 하나로 보통 이스트나 팽창제를 첨가하여 만든다”라고 되어 있다. 고대 제빵의 역사 초기에는, 화덕 안에서 반죽이 커지면서 만들어지는 빵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아기가 자라는 것만큼이나 신비롭게 여겨졌던 때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에겐 ‘잘 알려진’ 음식이다.
오늘날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음식인 것 같다. 빵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물었더니, “빵은 가끔 밥 대신 먹는 음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밥이 주식이고 빵은 부식이란 말이다. 그래도 젊은 세대의 식단에서 빵의 위상은 제법이다. 빵을 즐기는 내 친구는 “빵은 차 또는 커피와 함께 하는 간식”이라는 답을 줬다. 이렇게 되면 빵은 기호식품에 가깝다. 두 사람이 같은 말로 가리키는 빵의 종류는 매우 다를 것이지만 말이다.
빵은 장발장의 팔뚝이다! 이렇게 답한다면, 그 물음은 순간이동하듯이 우리를 다른 차원에 데려다 놓는다. 그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빵의 처절하고도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사족이 될 터, 남편을 여읜 누나와 그의 일곱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최하층 노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혹독한 겨울이 왔다. 장발장은 일거리가 없었다. 가족은 빵이 없었다. 말 그대로 빵이 없었다. 거기에 일곱 아이들까지. 어느 일요일 저녁, 파브롤의 성당 앞 빵집 주인 모베르 이자보가 막 자려고 하는데, 진열대의 창살 친 유리창에서 챙그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보니 마침 창살과 유리를 한꺼번에 주먹으로 때려 부순 구멍으로 팔 하나가 쑥 들어와 있었다. 그 팔은 빵 하나를 집어 가져갔다. 이자보는 급히 뛰어나갔다. 도둑은 전속력으로 달아났고, 주인은 그를 쫓아가 붙잡았다. 도둑은 빵을 던져 버렸으나, 팔뚝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장발장이었다.”
아홉 식구의 빈 배를 조금이라도 채워줄 팔뚝만 한 빵과 빈손을 늘어뜨린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팔뚝이 중첩되는 슬픈 순간이었다. 장발장은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죄인에 대한 법의 형벌 규정은 명백했다. 빅토르 위고는 말한다. “우리들의 문명에는 무서운 시기가 있다. 형벌이 파멸을 선고하는 시기가 그렇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빵은 우리 일상에서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경우가 있다. 옥스퍼드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로마에서 유학할 때 동문이었던 안드레아라는 친구도 교직에 있었는데, 연구차 옥스퍼드에 와서 한 학기 머물 거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가 옥스퍼드에 도착하기 며칠 전, 내게 에든버러에 갈 일이 생겼다. 그는 도착한 다음날부터 내가 언제 돌아오는지 계속 전화로 물어봤다. 내가 돌아오는 날, 늦은 저녁이었는데도 기차역에 마중까지 나왔다. 안드레아 입맛에 맞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그가 불쑥 물었다. “너는 여기서 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니?” 빵 문제라니, 나는 순간 멍했지만 그가 털어놓는 빵에 관한 고충을 경청했다.
그것은 빵 문제이자 식탁 문화의 차이에 관한 문제였다.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식탁에는 작은 빵 바구니가 있다. 영국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이는 요리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전자의 경우, 요리를 들면서 빵을 먹지만 요리 접시와 빵 그릇은 구분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빵과 요리가 한 접시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더라도 샌드위치나 버거 스타일로 빵 사이에 또는 파이 안에 고기 요리 등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오늘날 영국 음식은 대륙의 다양한 요리를 흡수하며 발전했지만, 식탁에서 빵을 대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빵 자체의 고유한 맛을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안드레아처럼 학회 참석 등 단기간 국외여행은 했어도 거주 경험이 없는 경우, 일상에서 자기 방식으로 빵을 즐기는 습관을 장기간 유보하기 힘들다. 그렇게 즐기지 못할 경우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가 나를 만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은 빵 때문이었다. 그는 며칠 동안 식사를 잘 못했고, 앞으로 몇달을 그렇게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던 것이다. 그에게 빵이란 무엇인가 물었다면, 당장 이렇게 답했으리라. 빵은 일상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제빵 전문가가 ‘빵’파와 ‘브레드’파를 나눈 것이 기억난다. 나는 어렸을 적 빵이 우리말인 줄 알았다. 지금은 상식이지만, 빵은 포르투갈어(pão)에서 유래한다.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는 라틴어 파니스(panis)에서 가지치기한 것으로 에스파냐(pan), 프랑스(pain), 이탈리아(pane) 등이 빵파다. 한편 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을 개항시킨 것을 계기로 영미 계열의 브레드(bread)라는 말도 아시아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빵파인 안드레아가 브레드파의 식탁에서 고생깨나 했던 것 같다.
지금 미국은 추수감사절 기간이다. 이건 근거 빈약한 추측이지만,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그 대표 음식으로 빵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칠면조구이, 구운 옥수수, 감자 요리, 호박파이 등이 있지만, 이 수확의 축제에 맞춘 특별한 곡물빵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미국 문화에서 브레드는 장발장의 빵만큼이나 뭉클한 사회적 의미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빵과 장미’(Bread and Roses)의 역사가 그렇다. “모두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 또한”, 이 구호는 1900년대 초 보통선거권 쟁취를 비롯한 미국 여권운동에서, 이민 노동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투쟁에서 함께했다. 배고픈 자라고 빵만을 원하지 않는다. 힘세고 가진 자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존중받을 권리를 요구한다. 이 구호는 시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퍼졌는데, 그 원조는 로마제국 시대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에게 있다고 한다. “빵을 두 덩이 갖고 있다면, 하나를 팔아 꽃을 사시오. 빵은 몸을 위한 양식이고, 꽃은 영혼을 위한 양식이기 때문이오.”
외래어에 대한 ‘언어탐방’을 하기로 해서, 이런저런 빵 이야기를 했지만, 이 글은 ‘밥이란 무엇인가’라고 해도 된다. 끝으로 선거철이라 ‘구국의 일념’으로 나선 분들에게 부탁한다. 민초는 ‘잘 먹고 사는 것’ 이상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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