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파사성서 원형 집수지(集水池) 2기 발견

김평석 기자 2021. 11. 23. 18:0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경기 여주시는 한성문화재연구원과 함께 진행한 파사성(婆娑城)에 대한 9차 발굴조사에서 원형 집수지(集水池) 2기를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집수지 2기가 확인된 곳은 파사성 중앙의 평탄지로 부속시설, 건물지 등도 발견됐다.

시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집수지 2기의 구조와 양상은 통일신라시대 말과 임진왜란 전후에 파사성의 군사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선 것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조선시대에 이르는 파사성 역사성 확인"
여주 파사성서 확인된 원형 집수지 2기와 건물지 모습.(여주시 제공) © News1

(여주=뉴스1) 김평석 기자 = 경기 여주시는 한성문화재연구원과 함께 진행한 파사성(婆娑城)에 대한 9차 발굴조사에서 원형 집수지(集水池) 2기를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파사성은 사적 제251호로 지정돼 있다. 남한강 길목이 요충지임을 보여주는 여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지난 8월 2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원형 집수지는 통일신라~조선시대에 축조된 것이다.

집수지 2기가 확인된 곳은 파사성 중앙의 평탄지로 부속시설, 건물지 등도 발견됐다.

집수지는 인위적으로 물을 모아 산성에서 장기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중요한 시설이다. 파사성에서 정확한 구조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에 위치한 1호 집수지는 지름 8.2m의 큰 원형으로 통일신라시대 처음 축조돼 사용되다 조선시대에 더 크게 개축된 것으로 추정됐다.

주변으로 부속시설과 담장이 있고 대형 건물지도 가까워 집수지를 중심으로 성 안의 건물 배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내부에서는 목간(木簡)과 함께 임진왜란 전후에 제작된 ‘右’자명의 백자편도 출토됐다.

시는 선조 25년(1592) 유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군 의암(義巖)이 성을 대대적으로 고쳐쌓았다는 기록과 부합하는 유물이라고 밝혔다.

1호 집수지에서 서쪽으로 17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2호 집수지는 최대 지름 7.4m의 타원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계단식 구조로 규모에 비해 깊게 축조됐다.

바닥에는 물의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두꺼운 점토를 깔았는데 점토가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점토 사이에 돗자리를 놓는 기법이 사용된 것도 확인됐다.

이런 축조 방법은 신라시대 산성인 부산 배산성 2호 집수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2호 집수지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까지 사용되다가 폐기됐던 것으로 추정됐다.

내부에서는 인화문토기 등 통일신라시대 토기와 기와류, 소뼈 등 동물뼈(獸骨)가 다수 출토됐다.

동물뼈는 하남 이성산성, 인천 계양산성, 안성 죽주산성 등의 집수지에서도 확인된 바 있어 향후 비교 연구가 기대된다고 시는 밝혔다.

시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집수지 2기의 구조와 양상은 통일신라시대 말과 임진왜란 전후에 파사성의 군사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선 것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시는 1999년부터 파사성에 대한 연차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시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해 향후 파사성에 대해 순차적으로 보존·정비를 진행할 계획이다.

ad2000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