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부고에 부쳐..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고][전두환 사망]
[기고] 정도상 ㅣ 소설가
호남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날 아침, 서울 인사동으로 ‘글과 수묵, 사진으로 만나는 윤상원’ 전시회를 보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버스 차창 밖으로 초겨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윤상원을 오랫동안 그려온 하성흡 작가를 생각하다가 전두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한순간, 멍해지더니 수많은 장면이 눈앞에 영화처럼 흘러갔다. 오래된 슬픔을 창문에 새긴 채 금남로를 바라보고 있는 전남도청이 떠올랐다. 그리고 인사동의 전시장에서 윤상원을 만났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이 남긴 말이다. 윤상원은 1980년 5월27일 새벽, 전남도청 전투에서 전사했다. 반면에 전두환은 전남도청을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고 승리했고 대통령이 되었다.
어느덧 41년 전의 역사였다. 윤상원은 전남도청에서 패배를 기록하고 전사했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부활하여 “추모되는 기억이 아니라 살아 격돌하는 현재”(신동엽문학관 누리집)가 되었다.
전두환은 전남도청에서 승리한 이후,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의 군사독재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는 수배와 고문과 투옥의 기술을 품은 유전자까지 계승했다. 광주에서의 학살은 물론이고, 그 후에도 꾸준히 은밀한 죽음을 자행했다. 군대로 강제징집된 학생들을 사고로 위장하여 살인했고, 학생과 노동자들을 고문하다가 살인했고, 백골단을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면서도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살인뿐만 아니라 감옥이 넘쳐날 정도로 투옥자도 많았다. 대학 교정은 물론이고 강의실까지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스며들어 감시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수배자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딸과 아들이 시위에 참여하면 부모를 감시했고 끝내는 직장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분단체제를 이용해 간첩을 수시로 조작하여 민주화운동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다. 농민과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쫓아냈고 블랙리스트를 이용하여 취업을 철저히 막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두환이란 존재는 민주주의로 나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가 누르면 누를수록 민중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대학에서 탱크와 정규군이 사라지자 학생들은 맨주먹을 높이 들었고, 공장에서는 민주노조를 건설하느라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농민들도 생존권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전남도청의 마지막 날, 시민군이 백기를 들어 계엄군을 맞이하지 않고 피 묻은 깃발 아래서 죽어간 이후, 민중은 단 하루도 깃발을 내리지 않고 투쟁하고 투쟁하여 마침내 6월항쟁을 이루어내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전두환 덕분이었다. 전두환이 대통령의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토록 가열찬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사한 윤상원은 금남로에서 종로에서 광화문에서 시청 앞 광장에서 ‘수천 수십만의 윤상원’으로 부활하여 전두환에게 맞섰다. 전태일을 계승한 윤상원은 박종철로 이한열로 다시 부활하여 우리 앞에 나타나곤 했다. 윤상원을 부활하게 만든 전두환이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전두환은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날마다 죽어야만 했었다. 그림으로 죽고, 노래로 죽고, 시로 죽고, 영화로도 죽어야 했다. 역사의 법정에서 그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백담사로 가서 숨어야 했고,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전두환은 승리하고도 몰락했던 것이다. 그는 상처를 확장하는 원흉이었고 살아서도 무덤에 갇힌 과거로 41년을 살아야만 했다. 영광은 짧았고 굴욕은 길었다.
전두환은 죽는 순간까지 광주항쟁을 능멸했다. 광주에서의 발포 명령을 부인했고, 인민군의 개입을 주장했으며 실정법의 법정에서조차도 뻔뻔한 변명과 위선으로 일관했다. 심지어는 자서전까지 출간하며 공개적으로 학살을 부인했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어떤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전두환처럼 처절한 패배자가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자들이 있는 이상, 5·18 광주항쟁과 6·10 항쟁 그리고 촛불항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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