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귀환, 막전막후 외교 빛났다

2021. 11. 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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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특별수송기를 통해 국내로 봉환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옮겨지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한 추진 배경과 주요 성과 등을 쉽고 친근하게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정책이 지닌 시대적 의미를 국민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재조명합니다. K-방역, 한국판 뉴딜, 탄소중립, 선도경제, 신한류, 한반도 평화 분야의 주요 성과를 시리즈로 짚어봅니다. 이번 호는 100년 만에 독립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영화 콘텐츠를 쇼핑하다가 우연히 영화 <봉오동전투>를 보게 됐어.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봤던 낯익은 단어에 그만 재생 버튼을 누른 거지. 일제강점기(1910~1945년)인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에서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해 대승을 거둔 우리 독립군의 전투를 그린 영화야. ‘봉오동전투’ 하면 ‘홍범도 장군’이 곧장 떠오르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봉오동전투를 지휘해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전설의 인물!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정작 홍 장군은 엔딩 장면에 잠깐 등장한다는 거야. 홍 장군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짧은 출연에도 봉오동전투를 지배했던 장군의 기백을 여실히 느끼게 해줬어. 그런데 홍 장군이 봉오동전투 뒤 죽은 영혼이 돼서도 타향을 떠돌다가 100년 만에 귀향한 사실, 알고 있어? 살아서 그렇게 바랐던 독립된 고향의 품으로.

▶9월 10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내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어린이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홍 장군의 귀환은 30년 걸친 노력의 결실

2021년 8월 15일 광복절 저녁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한 공군 특별수송기 한 대가 전투기 6대의 엄호를 받으면서 저녁 7시 30분 무사히 활주로에 착륙했어. 이어서 군악대 성악병의 독창곡 ‘올드 랭 사인’이 흘러나왔어. 이 노래는 1896년 11월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합창한 것을 계기로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국가처럼 불리던 노래야. 의장대 호위 속에 태극기로 고이 감싼 관이 특별수송기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어. 바로 홍범도 장군 유해였어.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공항에 나와 분향 및 묵념을 하면서 최고의 예우를 갖춰 홍 장군의 귀향을 맞이했어. 장군의 유해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온 거야. 장군이 마지막 여생을 보내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곳이지.

홍 장군 유해 봉환은 문 대통령이 2019년 4월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때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어. 원래는 봉오동전투 전승 100주년인 2020년에 유해를 봉환하려고 했어. 실제 그 해 3·1절 문 대통령이 유해봉환 결정을 공표하기도 했고.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약 없이 연기돼 오다가 2021년 8월 토카예프 대통령이 재방한하면서 그 결실을 보게 됐지.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021년 8월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홍범도 장군의 귀환은 30여 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라면서 홍 장군 유해봉환 과정에서 벌어진 우리 정부의 총력 외교전 뒷얘기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어.

정부는 2021년 8월 16~17일 이틀간 국민 추모 기간을 거쳐 홍 장군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봉송해 안장했어. 카자흐스탄에서 숨을 거둔 지 78년 만에 고향 땅에 묻힌 거지. 문 대통령은 홍 장군 안장식 추념사에서 “홍범도 장군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했어. 그런데 홍 장군의 유해는 왜 긴긴 세월을 돌고 돌아 카자흐스탄에서 오게 된 걸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하관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청와대)

대한민국 독립군 역사의 첫 승리 ‘봉오동전투’

홍 장군은 1869년 8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어.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읜 홍 장군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삶을 이어갔어. 한때 삭발승이 되기도 했던 홍 장군은 총솜씨를 인정받아 포수의 길로 들어서게 돼. 첩첩산중에 살던 장군의 인생을 바꾼 건 1895년 을미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의 칼에 무참히 살해당하면서야. 이때부터 산포수들을 규합해 의병 활동에 나서게 돼.

홍 장군은 뛰어난 사격술로 일본군을 소탕해서 ‘날으는 장군 홍범도’라는 별명을 얻어. 일본군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러일전쟁에서 승리(1905년)한 일본이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5년 뒤 1910년 나라를 빼앗자 홍 장군은 국경을 건너 만주와 연해주에서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해. 대한독립군을 결성해 총사령관에 올라 조국의 명운을 건 역사적 전투에 나선 거지.

1920년 경신년 6월 7일. 만주 봉오동 계곡에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 왔어. 상대는 독립군을 토벌하려고 편성된 일본군 정예부대 월강추격대대! 봉오동 계곡에 미리 매복한 독립군연합부대는 봉오동 상촌으로 일본군을 유인해서 협공을 퍼부었지. 전열이 급격히 무너진 월강추격대대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완전히 패퇴했어. 이날 전투는 대한민국 독립군 역사에서 첫 승리로 기록됐지.

봉오동전투의 승리를 발판 삼아서 넉 달 뒤인 1920년 10월 또 다른 승전보가 전해지는데 이 전투가 바로 청산리대첩이야. 홍 장군은 김좌진 장군과 연합해 보복전에 나선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지.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본군이 간도 지역 한인 수천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사건(간도참변, 1920~1921년)이 발생하면서 홍 장군의 항일무장투쟁도 시련을 맞게 돼. 그리고 이후 중일 간의 만주사변에 얽히기 싫었던 러시아가 1937년 일본과 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극동지역의 고려인을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어. 이 열차에 몸을 실은 홍 장군도 결국 카자흐스탄으로 흘러들어가 비극적 말년을 보내게 되지. 그러다가 1943년 머나먼 이국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해.

▶자료: 문화체육관광부

2021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조국 품으로

홍 장군이 여생을 보낸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는 지금도 그의 생가와 묘역이 보존돼 있어. 이 근처엔 ‘홍범도 거리’도 조성돼 있다고 하지. 홍 장군의 강인한 기백은 우리 군의 살아 있는 무기에도 깃들어 있어. 우리나라 해군이 보유한 1800톤급 최신예 잠수함 홍범도함은 2018년에 실전 배치돼 동해안 바다를 지키고 있지. 육군사관학교는 2018년 제99주년 3·1절을 기념해 생도들이 훈련에 사용한 탄피 300kg(5만 발)으로 홍 장군의 흉상을 충무관 앞에 설치해 그가 보여줬던 불굴의 투쟁정신을 기렸어.

2021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독립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홍 장군은 살아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권 분량의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완결한 이동순 시인은 긴 독립 여정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어. 이 시구를 마음속으로 낭독하면서 조국독립을 향해 이름 없이 젊음을 바친 무명용사의 잊힌 삶을 한 번쯤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나 홍범도! 고국 강토에 돌아왔네. 저 멀리 바람 찬 중앙아시아 빈 들에 잠든 지 78년 만일세. 내 고국 땅에 두 무릎 꿇고 구부려 흙냄새 맡아 보네. 가만히 입술도 대어 보네. 고향 흙에 뜨거운 눈물 뚝뚝 떨어지네.”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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