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바이러스의 시간표는 바이러스가 정한다 / 이종규
[아침햇발]
도대체 언제 끝날까? 끝이 있기는 할까?
기약 없이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유행을 보면서 요즘 드는 생각이다. 지난해 1월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으니, 두 달 뒤면 2년을 꽉 채운다. ‘코로나 2년‘을 계기로 거짓말 같이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불행히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올겨울 ‘5차 유행’을 한목소리로 예고하고 있다. 유럽은 이미 ‘5차 유행’에 들어섰다. 국민 70%가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우리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게 불과 두달여 전의 일이다. 바이러스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 잇따랐다. 정부 공식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지난해 4월11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는 ‘생활 방역’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때만 해도 그런 유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방역 긴장감을 높이려는 ‘엄포’ 정도로 여겼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 가을에 열 예정이던 국제 포럼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는 대구에서 시작된 ‘1차 유행’이 잦아들던 때였다. 그 뒤로도 한동안 확진자 수는 두 자릿수에 머물렀다. 한 자릿수일 때도 적지 않았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꼭 필요한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해 8월 이후로 지금까지 큰 유행만 벌써 3차례다. 유행 규모도 회를 거듭할수록 확연하게 커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번번이 인간의 기대를 저버렸다.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던 올해 봄에만 해도 ‘백신 선도국’들은 일상 회복의 꿈에 부풀었다. 국내 언론에 유럽 국가들의 일상 회복을 부러워하는 기사들이 잇따라 실린 게 이 즈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10일 취임 4주년 연설에서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조금만 더 견뎌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영국과 이스라엘 등 백신 접종이 빨랐던 나라들에선 초여름 무렵부터 ‘위드 코로나’ 실험이 시작됐다. 이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다. 델타 변이는 국내에도 4차 유행을 불러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델타 변이 탓에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역 책임자들이 “국민 70% 접종 완료로 11월 집단면역”을 ‘승리의 주문’처럼 되뇌었던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델타 변이의 출현으로 부분적으로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위드 코로나는 일상 회복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출구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백신은 여전히 ‘게임 체인저’로 여겨졌다. 유럽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이 9월과 10월 사이 속속 위드 코로나 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10월 말부터 ‘위드 코로나 국가’들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방역 규제를 급속하게 허문 데다 돌파 감염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11월 들어서는 덴마크(76.3%), 아일랜드(75.7%), 네덜란드(73.5%) 등 유럽에서도 접종 완료율이 높은 축에 속한 나라들에서조차 유행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입원 환자와 사망자도 증가세다. 영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병상 부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다시 방역의 고삐를 죄고 있다. ‘봉쇄’ 조처를 재도입한 나라들도 있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좀 비관적으로 보자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누가 알았겠나? 델타 변이가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돌파 감염이 일상 회복의 발목을 잡을 줄을. 이쯤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팬데믹 초기인 지난해 3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이 코로나19 유행 상황과 관련해 한 말이다. “시간표는 바이러스가 정한다.” 꽤 섬뜩한 말이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가 일찍이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지적했듯이, ‘포스트 코로나’가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 이후를 의미한다면 그런 날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그의 조언대로 ‘언젠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며 버티기보다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적당한 거리두기’를 ‘기본값’으로 정해 두고서 말이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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