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2.0 시대.."거대한 비둘기에서 매로 돌변할 위험"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68) 의장이 앞으로 4년 더 미국의 통화정책을 관할한다. 파월 의장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위기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제 두번째 임기를 앞둔 그가 차분한 목소리 이면에 날카로운 매의 발톱과 교활한 여우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하다. 파월 의장은 지난 4년 동안 거의 물가 상승압박이 전무한 상황에서 완전고용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둘기로 상징되는 느슨한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장을 달랬다.
하지만 팬데믹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미 경제는 31년 만에 가장 강력한 물가 압박에 놓였다. 치솟는 물가상승 압박은 이제 막 팬데믹 침체에서 탈출하고 있는 경제를 끌어 내릴 수 있다. 결국 고용을 희생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파월 의장이 거대한 비둘기에서 매(통화긴축)로 돌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가 변호사 출신 파월…트럼프-팬데믹 거치며 소통력 키워
인플레이션이 계속 높게 유지되면, 파월 의장이 경기 침체와 정치적 역풍 위험을 감수하고 비둘기에서 매로 변해야 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망했다.
파월 의장이 물론 타고난 통화정책 혁명가는 아니었다. 프린스턴대 정치학 학사 학위에 조지타운 로스쿨을 다닌 월가 변호사 출신이다. 조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부 차관보와 차관을 지냈지만, 이후 거의 20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1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준 이사로 발탁했다. 이후 2018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를 연준 의장직에 앉혔다.
트럼프 정권 하에서 파월 의장은 갖은 수모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시장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월 의장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 중에서 미국에 있어 누가 더 큰 적(enemy)인지를 물었던 일화까지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금융규제 완화를 이유로 파월 의장을 "위험한 남자"(dangerous man)라고 불렀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팬데믹 직후 전격적으로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해 민첩하게 대응하며 두번째 임기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하버드대의 제레미 스타인 경제학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팬데믹이 터졌던) 2020년 3월 연준이 최고였다"며 "파월이 일종의 '드라기 순간'을 누렸다"고 말했다. 드라기 순간이란 마리오 드라기 현 이탈리아 총리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시절 유럽의 채무위기 당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whatever it takes)" 유로를 지키겠다고 발언을 통해 강력한 정책대응을 펼친 시기를 상징한다.
◇"인플레 압박에 조기 긴축시 만성침체 위험"
하지만 첫번째 임기와 달리 지금은 인플레이션 압박이 막대하다. 물론 내년 인플레이션이 다소 완만해질 수 있겠지만 어느 수준까지 내려갈지가 관건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이 3% 넘게 이어진다면 파월 의장은 자신의 발언대로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여우'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WSJ는 예상했다.
그러나 파월의 여우 전략에는 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이 인플레 압박에 금리를 예상보다 빨리 올리면 저금리에 날아 올랐던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급격한 매도세가 휘몰아칠 수 있다.
또, 국채수익률(금리)이 오르면 가격이 내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치솟을 위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실업이 양상되면 결국 팬데믹 이전의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의 만성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WSJ는 경고했다.
FT 역시 앞으로 4년 동안 파월 의장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준이 원하는 수준의 '포용적'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불편할 정도로 높아져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심해져 결국 조기 금리인상을 단행할 지경에 이르면 파월 의장이 첫번째 임기 동안 쌓은 정치적 자본의 대부분을 소진해야 할 수 있다고 FT는 경고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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