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내 아들이 ‘제육볶음’ 만드는 법을 배우려는 까닭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2021. 11.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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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은퇴하는 반백의 아들이 어느날 요리를 배우겠다며 찾아왔다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도, 꼰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도 아니란다
음식은 머리 아닌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 일렀으나, 엄마는 서글펐다

-어무이요.

“와.”

-요요 제육볶음 우찌 만듭니꺼?

“우찌 맹글긴. 손으로 맹글제.”

-뭐뭐 옇고 만들었냐고요.

“와, 짭나.”

-짠기 아이고, 좀 배울라꼬.

“누가. 니가?”

-와, 안 됩니꺼?

“혁이 에미가 밥 안 해주드나. 싸웠나.”

-그기 아이고. 내도 주말에 요리 쫌 해볼라꼬요.

“드잡이한 거 맞네.”

-안 싸웠다니께네. 요즘 요리할 줄 모리면 꼰대 소리 듣는다 아입니꺼.

“꼰대 소리 듣고 살라, 고마.”

-대선 후보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표가 쏟아지는 세상입니더.

“와, 대통령 할라꼬?”

-계란말이를 벽돌만 하게 부치고, 김치찌개를 뚝딱 낋이니께네 여자들이 막 좋다고 안 합니꺼.

“와, 다 늙어 새장가 갈라꼬?”

-아 참, 말기 몬 알아들으시네. 제육볶음 우찌 만드냐는데 와 자꼬 삐딱선을 탑니꺼? 고마, 치우소!

“뭘로 맹글기는. 돼지고기로 맹글제.”

-돼지 중에서도 어데? 삼겹살, 목살, 갈비살, 항정살, 뽈살, 덜미살, 토시살 중에 어데?

“넘들은 기름 붙은 삼겹살로 한다만 내는 목살 또는 앞다리살로 한다.”

-양념은 우찌 하고요.

“우찌 하기는. 갖은 양념 넣어가 맹글지.”

-그 갖은 양념이 뭐냐고요, 글쎄.

“마늘 생강 파 양파 고추 썰어 옇고, 고추장 간장 참기름 매실즙도 쪼매씩 옇고.”

-참 나, 서울 할매들맹키로 일번 이번 해감시로 레시피를 또박또박 일러줘야 따라잡는다 아입니꺼.

“뭔 씨피? 네쓰피?”

-긍게 간장 몇 리터, 고추장 몇 컵, 참기름 몇 스푼….

“내는 무식해서 그런 거 모린다. 음식을 손으로 하지, 기계로 맹그나?”

-긍게 매실즙을 어른 숟갈로 몇 숟갈 넣느냐고요.

“얼라 오짐맹키로 여믄 된다.”

-하~ 몬 산다. 그럼 돼지고길 볶다가 양념, 채소 넣고 쫄이면 끝입니꺼?

“고기에 양념이 잘 배이고로 일바켰다 눕힜다 해감시로 고루고루 볶아야지. 고기는 한입에 먹기 좋고로 반으로 농가고.”

-농가고가 뭡니꺼. 촌시럽구로.

“그럼 쪼갈르든가.”

-마, 됐고요. 요요 된장찌개는 우찌 낋입니꺼.

“우찌 낋이기는. 된장 옇고 낋이지.”

-우찌 낋이야 깊고 구수한 어무이 손맛이 나냐고요.

“일번, 찬물에 메르치와 다시마를 옇고 낋인다. 이번, 육수에 된장을 풀어가 팔팔 끓으면 애호박 양파 감자 대파 두부를 한그쓱 썰어 옇는다. 삼번, 마늘도 쪼매 옇는다. 사번, 맵삭하게 먹을라카모 청양고추를 썰어 옇는다. 오번, 더 칼칼하게 먹을라카모 고춧가루를 허친다.”

-뭣이 이리 간단하노?

“안 끝났다. 육번, 버끔을 살살 걷어낸다.”

-뭘 걷어요? 버끔?

“그래야 쓰고 텁텁한 맛이 날아가제. 우리 글쓰기 선생도 그랬다. 버끔 아니, 군더더기를 싹 걷어내야 글이 맑고 담백해진다꼬. 양념 많고 수식이 화려하면 글이 영 천박해진다꼬.”

-글쓰기 교실은 또 운제 다녔능교?

“자식이 되야가 늙은 에미가 뭣을 하고 사는지도 쫌 딜이다보고 그래라. 이래 봬도 군민 백일장으로 등단한 작가다 내가.”

-진짜요? 우리 혁이가 어무일 닮아가 국어를 백점 맞는갑네예.

“치아라. 뻐스 지나갔다.”

-근데 집사람은 어무이 된장으로 낋이는데도 와 이 맛이 안 납니꺼.

“느그들이 쎄빠지게 공부해가 박사 학위 딸 때, 내는 쎄빠지게 밥하고 반찬 맹글어가 돈 한 푼 못 받는 부엌데기 박사 됐다 아이가.”

-아, 또 와 그랍니꺼. 그나저나 쪼매 있으면 우리 어무이 김장김치 맛보겠네예.

“그래서 올개부터는 공짜배이로 안 줄라꼬. 내도 지적재산권을 쫌 행사해볼라꼬. 와, 꼽나?”

-꼽기는예.

“억울하면 몸으로 때우등가.”

-와서 거들라꼬요?

“음식은 머리가 아니라 요요 손으로 배우는 기다. 입에 닿기 전 손이 먼저 그 맛을 감지해야 하는 법. 양파를 믹서에 가는 기랑 손으로 강판에 가는 기랑 그 맛이 천지차로 갈라지는 거 아나?”

-밥이 곧 하늘! 김칫소 하나에도 혼을 갈아 넣어라, 이 말씀 아인교.

“주디는 똑똑다.”

-누가 압니꺼. 신이 내린 어무이 손맛을 이 아들이 이어받아 인생 2막으로 꽃피울지.

“싸운 거 맞네. 드잡이한 거 맞어. 우짠지 얼굴이 비틀어 짠 오이장아찌 같더라만. 와, 은퇴할 날 닥치니 요리라도 배우라 카드나. 니 밥은 니가 해 먹으라카드나. 내 이 혁이 에미를 기냥!”

♣ 이철원 기자가 그린 일러스트(삽화)를 클릭했을 때 나오는 오디오 음성은, 75세의 조선일보 독자분이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글 속 모자(母子)와의 대화를 육성으로 녹음해 본지에 보내온 것입니다. 혼자서 1인 2역을 맡아 주고받는 대화가 서툴고 느리고 어눌하지만 그래서 정겹고도 쓸쓸한 느낌을 주기에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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