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참!]삼각관계의 비극 '한·미·일 공조'

이봉수 언론인 2021. 11.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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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브란트가 깔아놓은 철길 위로 콜이 기관차를 운전해 통일의 종착역에 도착했다.’ 독일 통일 과정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그렇다.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69년 취임하면서 동독을 지원하는 동방정책에 착수했다. 우파는 ‘조국의 배신자’, 좌파는 ‘사회주의의 배신자’라 비난했다. 보수당인 기민당 소속 헬무트 콜 총리는 정적이던 브란트의 정책을 계승해 주변국과 여당의 반대를 무마하고 동독 공산정권에 10억마르크 차관 등 퍼주기 정책을 폈다. 통일 직후에는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을 장관으로 발탁하는 등 화합정책을 썼다.

이봉수 언론인

평화정착이나 통일은 보수세력도 건전해야 가능해진다. 국민의힘 주요 인물들의 종전선언 반대 발언과 수구언론의 논조를 보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종전선언이 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로 이어진다며 반대했고 이준석 대표는 전시작전권도 필요 없고 현 정부 대북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정과 국제법을 무시한 채 미국과 일본의 이익에 부화뇌동하는 건가?

종전선언은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전쟁 상태를 끝내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따라서 평화정착 논의의 출발점일 뿐 주한미군 철수와 직접 관련이 없고 정전협정도 유효하다. 주한미군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것이며 유엔사는 지금도 유엔이 인정하지 않는 이름만 빌린 ‘차명 사령부’이다. 조약과 협정은 필요하면 맺고 불필요하면 폐기하는 거지만 전 정부가 한 국가 간 약속을 쉽게 뒤집는다면 평화정착과 통일은 요원해진다.

문재인 정부 업적 뒤집기를 ‘정책’으로 내세운 윤 후보는 9·19군사합의도 북한이 어겼다며 파기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사일은 남북한 둘 다 발사하고 있다. 우스꽝스럽게도 대부분 우리 언론은 미사일을 남한이 발사하면 ‘개발 성공’, 북한이 발사하면 ‘도발’로 보도한다. 북한뿐 아니라 남한과 미국도 적대행위 중단을 약속해놓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재개하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얽히고설킨 남·북·미 관계에 찬물을 끼얹어 얼어붙게 하는 게 일본이다. 종전선언이 성사되려 하자 일본은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에서 경찰청장의 독도경비대 격려방문을 트집잡아 공동기자회견을 거부했다. 일본은 2018년 북·미 회담 때도 종전선언 반대 뜻을 미국에 전하는 등 한반도 평화정착에 훼방꾼 구실을 해왔다.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국내정치에 이웃 국가의 운명을 끌어들인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로 전후 복구를 앞당겼고 23만 자위대만 유지하며 청년인력과 예산을 경제발전에 투입했다. 한국이 60만 대군을 유지하며 한때 예산의 35%에 이르는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한 반사이익을 일본이 누렸다.

1905년 한국과 필리핀 지배를 서로 묵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 이래 미·일은 자국 이익을 위해 한국을 희생시킨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1951년 미·일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을 때 미국은 일본이 불법점유한 독도를 한국에 돌려주려 했으나 일본의 로비로 빠졌다. 한·일관계 악화 요인을 미국이 제공해놓고 지금은 모른 체한다.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막대한 분담금을 물리고 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강요했다. 이번에도 미국이 한국전쟁 당사국도 아닌 일본을 끌어들인 것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연결해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의도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수구기득권동맹은 한·미·일 공조에 민족의 운명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간다. 미국의 관점에서 진보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데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제일 앞장서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연합뉴스마저 비슷하게 따라간다. 지난 18일자 ‘연합시론’ 제목은 ‘물샐틈없는 한·미·일 공조 속 종전선언·북핵 진전 기대한다’였다. 훼방꾼이 끼어든 한·미·일 공조로 종전선언이 가능할까?

국제관계나 남녀관계나 삼각관계는 불안하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려면 때로는 한·미·일 공조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일본에 가서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 시점을 비판했다. 일본이 반대한다고 우리 영토에도 아무 때나 못 들어가고 종전선언과 전시작전권 환수도 못한다면 한국을 독립국이라 할 수 있나? 남북이 자주적으로 평화를 주도하지 못하면 미·중 대결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이봉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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