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장 억압해 국민을 '줄 서기'로 내모는 정부
인생에서 줄 서기는 피할 수 없다. 식당·지하철·병원·PCR 테스트 등 기다림의 연속이다. 콘서트 예매, 수강 신청, 소상공인 대출 신청처럼 비대면 세계에서도 줄 서기는 마찬가지다. 줄 서기의 근본 이유는 제공되는 양보다 원하는 이가 많은 ‘초과수요’ 때문이다. 이 초과 분량을 0으로 만드는 가격이 ‘균형가격’이다. 균형이 되면 대기 줄이 없다. 반대로 현재 가격이 균형가격보다 낮을수록 줄은 길어지고 갈등도 커진다.
이미 쉽지 않은 줄 서기에 각종 정부 정책들이 꾸역꾸역 만들어내는 줄들로 우리 삶은 훨씬 더 고달파지고 있다. 그들 중 다수는 악성이다. 관찰해 보니 정부는 세 유형의 초과수요를 만들어 우리를 대기조로 내몬다. 때론 오징어 게임처럼 밀어붙인다.
첫째, 공급은 줄이고 가격은 낮게 고정시키는 정책이다. 2020년 6월에 도입한 아파트 재건축 관련 2년 실거주 요건 규제가 대표적이다. 집주인들이 요건을 채우려고 자기 집에 들어가니 전·월세 물량은 빠지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도입한 전·월세 상한제는 가격을 고정시켜 버렸다. 임차인들의 길어질 대기 라인은 불 보듯 뻔했다.
둘째, 수요를 늘리면서 역시 가격은 누르는 정책이다. 같은 해 7월 임차인 권리를 높이겠다고 군사작전 하듯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했다. 이제 4년까지 보장되니 당연히 전·월세 수요는 늘었다. 그런데 5% 상한제로 가격의 조정 기능은 무력화시켰다. 힘든 대기 라인을 한 번 더 늘렸다. 거기에 전·월세 신고제로 줄 늘리기 효과를 강화했다.
셋째, 시장 균형 밑에서 가격을 그냥 고정해버리는 정책이다. 2019년 민간 택지 아파트에도 도입한 분양가 상한제가 대표적이다. 통제 가격에서 채산이 맞지 않으니 공급량은 줄었고 시세보다 낮으니 수요량은 늘었다. 오롯이 정부가 만들어 낸 ‘로또 줄’이고 죄 없는 시민들로 하여금 영끌하여 또 줄 서게 만든다.
2017년부터 16%와 11%라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최저임금 정책도 사실상 똑같은 성격을 띤다. 과속 상승된 임금에 구직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긴 줄을 섰다. 공인중개사 자격 시험에 40만명이 몰렸고 2030세대 비율이 40%나 된다는 최근 뉴스가 유독 우울하다.
시장 거래에 비해 줄 서기 방식에서는 거래량이 늘 쪼그라든다. 그 밖의 폐해들도 심각하다. 우선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허비한다. 차고 넘치는 사례들 중 미국에서의 몇 차례 휘발유값 상한 규제는 실로 상징적이다. 주유소 문을 여는 순간 금방 동이 났다. 이를 아는 시민들은 겨울에도 새벽부터 하염없이 줄을 선다. 추우니 자동차 히터로 기름을 태우면서.
상품의 질도 좀먹는다. 어차피 덥석 사주니까 더 잘 만들려는 유인이 별로 없다. 그래서 배급제 국가의 상품은 조악하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겨우 들어간 전셋집 장판에 곰팡이가 폈는데도 집주인이 수리에 게으르다는 하소연도 많아질 것이다. 게다가 강요받은 줄을 서면서 긁히는 마음의 쓰린 생채기도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이처럼 줄 서기 대부분은 몹시 저속한 자원 배분 방식이다. 그런데도 자고 일어나면 또 유사 발표를 접한다. 아연실색하며 들은 음식점 총량제 아이디어는 악성 줄 세우기의 끝판왕이다. 목적에 철저히 잘못 꿰인 수단으로서 파생될 부작용이 끝도 없이 떠오른다. 나아가 정부는 줄을 장악한 후 종종 짬짜미 새치기도 시켜준다. 심지어 멀쩡하던 줄을 자르고 쌈지 속 딴 줄로 휙 바꿔치는 파렴치도 보인다. 그걸 보며 국민들은 정부의 공정성 잣대를 자주 의심했다.
정부 때문에 애먼 줄을 설 것 같으면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를 이제 강하게 캐묻자. 당장 요소수 사려는 저 긴 줄과 위험수위에 이른 코로나 중증 병상 가동률, 도대체 누구의 (부)작위 때문이고 절체절명의 기다림들에 어떤 책임을 지겠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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