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칼럼]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 (3)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2021. 11.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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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3월 이 칼럼에서 같은 제목의 글을 두 번 썼다. 내년 3월9일 대선을 1년 앞두고서였다. 그동안 후보들이 선출됐다. 이제 대선이 10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경쟁 국면이 열렸다. 변화된 정치지형 아래서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번 주목해 보고자 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먼저 눈에 띄는 건 대선 열기가 옛날 같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사회는 뜨거운 반면 시민사회는 미지근한 것처럼 보인다. 나만 그럴까. 까닭을 찾는다면 세 가지다. 첫째, 후보들에 대한 호감보다 비호감이 두드러진다. 비호감도가 높은 후보들로 치러지는 특이한 대선이다. 둘째, 팬덤도 과거만 못하다. ‘빠’든, ‘파’든 특정 후보에 대한 절대적 혹은 맹목적 지지가 두텁지 않다. 셋째, 정권교체 프레임의 영향력이 거세다. 프레임이 압도적인 만큼 리더십·비전·정책의 차이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대선의 시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다 어느 날 기표소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할지 모른다. 미지근하다고 대선의 의의가 작아지는 건 아니다. 100여일 후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당선자는 인수위원회를 구성해 국정 청사진을 마련한 다음 5월10일 새 정부를 출범시켜야 한다. 160여일 후면 새로운 대한민국호를 조타해야 한다. 집권이 대통령 혼자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정의 핵심 사안들은 결국 대통령 본인이 고독하게 결정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 선택이 국민의 실질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는 지난 정부와 현 정부가 생생히 증거한다.

대선 후보들의 시대정신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가 어떤 현실 진단과 미래 비전을 갖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선 자리에 대한 판단과 갈 길에 대한 선택이 달라진다. 이 현실 판단과 미래 선택은 이념의 구속을 받는 동시에 그것을 넘어선다. 현실과 미래는 본디 이념에 앞서 존재한다. 가능한 한 객관적 시각에서 2022년 대선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번 다루는 이유다.

2022년 대한민국의 선 자리를 판독하기 위해 나는 지구적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와 뉴노멀의 시작, 플랫폼 비즈니스의 약진과 메타버스의 등장, 중국의 부상과 미·중 경제전쟁의 개막,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위기, 불평등의 강화와 사회갈등의 증대, 정보사회의 진전과 탈진실 시대의 도래, 개인주의와 부족주의의 동시 심화, 그리고 바이러스 폭풍과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인류의 삶과 사회를 뒤흔들어 왔다.

이 모든 현상들을 관통하는 세 키워드는 뉴노멀, 불안, 글로벌 위험이다.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뉴노멀이었다면, 이 변화를 겪는 마음의 상태는 불안이었다. 이 와중에 글로벌 위험으로서의 팬데믹과 마주했다. 변화의 방향은 이제 예측하기 어렵고, 거기에 속도까지 더해져 인류는 낯설고 두려운 풍경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갈 길을 모색하는 게 시대정신의 미래 과제라면, 그 모색은 이런 맥락에서 뉴노멀, 불안, 글로벌 위험에 맞선 ‘새로운 회복’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회복이 일차적으로 겨냥해야 할 것은 불안과 분노를 해소할 포용적 성장 및 불평등 완화다. 특히 팬데믹이 사회·경제적 격차를 강화시켜 사회갈등을 증대시켜온 것을 주목해 ‘코로나 불평등’의 해결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하여, ‘민주적 혁신’이 요구된다. 2020년대는 플랫폼 시대가 만개할 만큼 플랫폼에 내재한 승자독식을 완화할 섬세한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포퓰리즘과 탈진실 시대에 맞서서 다원적 공론장 및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활력을 북돋아야 한다. 어느 나라든 2020년대에는 이처럼 새로운 회복과 민주적 혁신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시대정신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통령의 자격은 비전·정책·실행력 등 여럿을 포괄한다. ‘대장동 의혹’이든, ‘고발 사주 의혹’이든 후보의 도덕성이 갖는 중요성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지구적 변동을 고려한 시대정신이다. 다음 정부가 직면할 3대 과제는 디지털 전환의 능동적 대응, 초고속 고령화의 신속한 대처, 국민통합의 적극적 구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은 100여일 동안 이 과제들에 대한 후보들의 시대정신과 그 해법을 듣고 싶어 하는 이가 나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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