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가성비와 비효율

김보미 뉴콘텐츠팀장 2021. 11.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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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미지컷. unsplash

효율성은 ‘가성비 시대’에 많은 것들의 가치를 매긴다. 상품뿐 아니라 노동력, 문학 작품, 연애와 결혼의 쓸모를 판단하는 데까지 등장하는 기준이다. 시간이나 돈과 노력의 투입은 최소화하되 결과값은 극대화될수록, 효과가 즉각 확인될수록 가치가 커진다.

관성처럼 익숙해진 가성비 이론에서 벗어나 ‘무쓸모의 쓸모’를 떠올리게 된 것은 우리 팀에서 발행 중인 뉴스레터 ‘인스피아’의 구독자 피드백을 받고 나서다. “비효율성이 주는 가치를 다룬 레터 내용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답변이었다. 이름처럼 ‘영감’(inspiration)을 전하는 데 목적을 둔 이 레터는 신문사의 다른 콘텐츠와 달리 시의성을 우선 가치에 두지 않는다. 오래 묵혀, 길고 느리게 보는 글을 지향한다. 피드백을 받은 회차에선 이런 레터의 세계관을 소개하며 비효율성이 사안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메시지를 구독자들에게 보냈다.
※ 본문 속 뉴스레터 ‘인스피아’의 링크가 연결되지 않으면 검색창에 다음 주소를 넣어주세요.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7426

뉴스레터에서 언급한 ‘효율’은 사실 ‘인스피아’를 비롯한 팀의 다양한 채널을 관리하는 스스로의 자성적 고민이기도 하다. 신문에 기사를 싣는 것을 가장 잘하는 ‘신문사’에서 기사라는 형식, 신문이라는 매체를 버린 채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이미 쓸모를 인정받기 어려운 것을 전제로 시작한 셈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려면 관성을 끊어내고, 기꺼이 비효율을 감당할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전환에서 가성비 이론은 방어기제처럼 수시로 작용된다. ‘투입 대비 결과가 적절 혹은 효율적이었나.’ ‘쓸모 있는 생산물을 만들어냈는가.’ 스스로 검열하는 장치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비효율이 가능성을 만들고 무용했던 가치가 유용성으로 전환되면서 움직였다. 상업성 등의 효율성이 배제된 기초과학은 인류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핵심이다. 소설 등의 문학은 자기계발, 재테크 등의 장르에 비해 독자의 삶에 당장 변화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서적을 읽은 이들의 양심과 심연을 움직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김보미 뉴콘텐츠팀장

인권도 그랬다. 학생들의 교복에 부착된 실명의 명찰, 재혼 가정 부모는 받아들이지 않는 학부모 운영위원회, 흰머리를 보여선 안 되는 카지노 딜러…. 개인의 사소한 불평이라고 치부됐던 11만여건의 진정들이 모여 한국에서 ‘인간의 권리’라는 의제를 성장시켰다. 20년 전 논란 속에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시민들의 이의 제기를 쓸모없는 문제 제기가 아니라 권리를 위한 담론으로 꾸준하게 받아들인 덕이다. 카지노의 염색 문제를 인권위로 가져갔던 딜러는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원래’였다고 회고했다. ‘원래 회사에서는’ ‘원래 서비스업은’…. ‘쓸모’라는 말은 ‘원래’와 마찬가지로 기성의 가치관이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된 어휘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와 효율을 증명하는 게 시대정신이 되면서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찐’이 움직이는 마음이다. “창작자가 자본주의적인 교환가치(책값 등) 이상의 ‘쓸모없는’ 취향과 열정을 쏟아붓는 순간을 거친 콘텐츠”는 분명 보는 이에게 가성비 이상의 것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의 비효율성을 지키고 있는 ‘인스피아’와 ‘연구자’(인스피아의 구독자 애칭)가 서로 응답한 것처럼 말이다.

김보미 뉴콘텐츠팀장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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