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자리 사냥꾼'과 곡돌사신
[경향신문]
관록의 힘은 강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야기다. 대선 판세를 읽는 김종인씨는 정교했다. 우선 김씨는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후보 주변으로 ‘파리’들이 모인다고 한 자락을 펼쳤다. 이어 윤석열 후보 캠프에 몰려든 인사들 중 ‘자리 사냥꾼’이 있다고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복선을 깔았다. 캠프에 일찌감치 터를 잡은 인사들이 졸지에 ‘파리떼’이거나 ‘자리 사냥꾼’이 됐다. 모욕적인 언사였지만 막판 예상을 깨는 정치적 숨고르기로 윤석열 캠프를 긴장케 하는 김종인씨가 등장할 경우 누군가의 퇴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여권의 ‘책사’로 불리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후보만 죽어라 뛰고 있다”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분들이 벌써 마음속으로 다음 대선, 다음 대표나 원내대표, 광역 단체장 자리를 계산에 두고 일한다”고 작심한 듯 비판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구까지 인용, 이재명 캠프의 과감한 변화를 주문했다. 이재명 후보의 특검 수용과 이해찬 전 대표와의 회동은 캠프 인적쇄신의 급류를 예고했다. 뒤숭숭한 캠프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물갈이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여야 캠프에 합류한 인사들의 배경을 놓고서 각종 ‘설’들이 메타(이전의 페이스북), 카톡 등 랜선을 타고 호사가들 사이에서 회자된 지는 오래다. 면면을 보니 누구는 공개로, 누구는 비공개로 활동 중이다. 공개적으로 활동 중인 전문가들 다수는 현재 대학에 적을 두고 있거나 아니면 공직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인사들이다. 반면에 비공개로 활약 중인 전문가들 중에 국책기관 연구소들에 소속된 박사급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출연 국책기관 연구원들은 규정상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지만 모두 이를 알고서도 모른 체하고 있다. 여태껏 그랬다.
그러다 선거가 끝나면 승리한 캠프에서는 완장을 찼던 교수, 전직 관료, 박사급 연구원들이 논공행상을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게 되어 있다. 자리를 놓고서는 명예도, 자존심도 내팽개치기 일쑤다. 권력의 풍향계에 예민하게 촉수를 뻗으면서 후보자의 심기에만 의탁하는 ‘정치 불나방’들의 도덕적 타락이다. 자신의 영혼에 불명예를 수치스럽게 자자(刺字)하는 셈이다. 잔치자리가 곧바로 아수라장이 되는, 후유증이 깊고 오래 남는 이유다.
이처럼 ‘파리’들의 존재는 고스란히 후보에게는 리스크이다. 따라서 이참에 뇌관을 미리 제거하는 게 맞다. 사실 선거를 4개월여 남겨놓은 이쯤에서 유증기(油蒸氣)가 꽉 찬 캠프의 창문을 활짝 열어 한번쯤 환기할 때가 되기는 됐다. 그래야 예기치 않은 화를 미연에 방지하는 셈이 된다. 후보로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긴 해도 ‘자리 사냥꾼’들이 완장을 풀고 조용히 캠프를 떠나게 하는 회유와 압박은 불가피하다. 정치의 ‘본캐’인 ‘비정한 아름다움’이다.
본래 정치라는 칼이 손잡이까지도 칼날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지도자들은 ‘위기는 기회다’라는 허망한 소리를 늘 입에 달고 산다. 틀렸다. 위기는 기회가 아닌 문자 그대로 ‘위험한 때’를 뜻한다. 위기를 극복할 게 아니라 위기 자체를 만들지 않으면 될 텐데 왜 이들은 위기가 닥쳐야만 기회를 찾으려 할까. 변화무쌍한 정세를 예리하게 척후(斥候)하는 데 실패한, 무능하거나 위선적이거나,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일 경우가 높다.
나라 안팎의 풍경이 위기적 상황이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 부동산 가격 급등, 인플레이션, 글로벌 공급망 차질, 코로나19 확산, 고령화, 인구 감소, 북핵 증강, 미·중 격돌 등 위기 경고등이 여러 곳에 켜져 있다. 하지만 집에 불이 나기 전에 굴뚝을 수리한 사람의 공은 모른 체하다 불이 나자 불을 끄려고 돌아다닌 사람의 공만 치켜세우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지도자들이 곡돌사신(曲突徙薪)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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