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개인정보법 '기업처벌법' 될라
데이터산업 진입장벽 높아져
혁신서비스, 일자리 감소 우려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마련한 개인정보보호법(개인정보법) 개정안에 대한 기업들 반발이 커지고 있다. 과징금을 대폭 상향하고 분쟁조정위원회에 기업 조사권을 부여하는 등 기업을 옥죄는 규제 조항이 적지 않아서다. 개인정보위는 관련 기업들의 거듭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정안 국회 제출을 강행했고, 연내 법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 반발이 가장 큰 사안은 과징금 규모다. 개정안은 법 위반 기업에 대한 과징금 상한 기준을 현재의 ‘관련 매출액 3%’에서 ‘전체 매출액 3%’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정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업 부문의 매출액까지 모두 합쳐 과징금을 산출하게 된다.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
개정안대로라면 과징금 규모가 수십, 수백 배까지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매출 10조원 규모의 기업은 과징금을 최대 3000억원까지 맞을 수도 있게 된다. ‘위반행위로 인한 경제적 부당이득 환수’라는 과징금의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는 규모다.
관련 단체들은 그동안 두 차례 공동입장문을 내고 과징금 상향 등에 반대했다.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등 11개 단체는 “중소·벤처기업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이 2~3% 안팎인 상황에서 과징금 부과기준이 상향될 경우 개인정보 처리가 필수적인 사업 또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중소·벤처기업은 경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과징금은 데이터산업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 등에 진입 장벽이 돼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혁신 서비스 출현을 막고, 데이터 분야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기업에 대한 적용실행력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만 과도한 과징금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분쟁조정위원회에 기업 강제 조사권(사실조사권)을 부여한 법안 내용도 기업들이 꼽는 독소조항 중 하나다. 말로만 분쟁조정이지, 사실상 ‘강제조정’하겠다는 내용이어서다. 개정안은 분쟁조정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업 출입은 물론 자료 조사·열람권을 주도록 했다. 분쟁조정 요청에 응해야 하는 대상도 공공기관에서 모든 개인정보처리자로 확대하도록 했다. 분쟁조정위에 사법경찰에 준하는 권한을 쥐여주자는 얘기다. 분쟁조정이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제재와 과징금을 부과하기 위한 ‘기업 수사’와 ‘압박’이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개정안에 포함된 ‘가명정보 파기 의무화’도 논란 대상이다. 가명정보는 식별되지 않게 처리하는 것으로 안전성 문제가 적어 기업들에 불필요한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본인 정보를 본인 또는 다른 사업자에게 전송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개인정보 전송요구권’ 신설도 뜨거운 감자다. 금융 외 전 산업 분야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지만, 자칫 기업의 재산권과 영업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법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관련 업계는 개정안 입법예고 이후 의견수렴 간담회, 공청회, 공동입장문 발표(6월, 9월) 등을 통해 과징금 상향과 기업 강제조사 등에 반대하고 법안 내용 수정을 요구했지만, 개인정보위는 요지부동이다.
과징금 상향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개인정보위는 법률전문가와 기업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과징금 부과기준 연구반’을 구성해 지난 3일 첫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전체 매출액 기준 과징금 부과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해 산업계 목소리가 반영될지는 회의적이다. 이번 주에는 한국데이터산업협회와 벤처기업협회 등 개인정보법 개정 찬반 단체들의 토론회가 잇따라 열려 논란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개인정보법 개정안이 데이터산업 육성과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또 하나의 ‘기업처벌법’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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