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81] '경제적 자유'는 '행복 중독'의 유사품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1. 11. 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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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등 투자 관련 고민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가 ‘경제적 자유’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모든 연령대에 경제적 자유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이 상당하다. ‘경제적 자유’는 도대체 얼마를 가지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오너는 경제적 자유를 느낄 것 같으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아닐 것 같다’고 답한다. 자산을 늘려 가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경제적 자유라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기는 한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

‘행복 중독’이란 용어가 있다. 너무 행복해지려고 집착하면 오히려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의 알고리즘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만 행복’이라고 설정해 버리면 삶이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다. 슬픔, 외로움, 우울 같은 불편한 감정도 살면서 느끼는 중요한 삶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더 강력한 즐거움만을 힘겹게 좇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의 강자가 될 수 없다. 다양한 장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처럼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즐기는 여유, 그 여유를 갖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 우울하다고 오늘이 불행한 건 아니다. 내 인생이란 영화 속 오늘이라는 장면이 좀 ‘블루’한 것뿐이다. 그 자체도 커피 한잔 곁들이며 즐길 수 있다면 행복일 수 있다.

완전한 행복, 사랑, 자유가 존재할까, 그에 대한 갈망은 본능이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삶의 지향점으로서 의미는 있지만, 완벽한 자유가 성공 기준이 돼버리면 내 삶은 항상 부족하고 뒤처져 있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경제적 자유는 행복 중독이 이름을 바꾼 유사품 아닌가 싶다. 경제적 여유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일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역으로 그 때문에 자유를 잃고 얽매이는 경우도 수없이 본다. 유산으로 줄 자산이 없는 부모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유산 싸움을 바라보는 자산가 부모의 마음이라고 더 자유로울까.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되었다는 고민을 접한다. 주식 가격이 떨어지는데 손절 시기를 놓치다 보니 의지와 상관없이 장기 투자자가 되어 오히려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실제 자산 수준과 상관 없이 ‘부자의 마음’으로 투자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부자의 마음이란 뭘까. 목표에 대한 집착이 아닌 여유가 아닐까 싶다. ‘경제적 자유’란 말 속의 두 단어를 분리해 보길 권하고 싶다. 소중하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삶의 가치인 ‘자유’를 ‘투자’나 자산 증식과 지나치게 연동시키면 내 삶을 자유보다는 불안 쪽으로 몰고 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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