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한 달.. 끊이지 않는 교제살인에 실효성 도마 위 [이슈+]

박지원 2021. 11. 2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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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 시행 한 달.. 日 신고 건수 4.3배 늘었지만
중구 신변보호 여성 피살사건 등 교제살인 예방 못 해
전문가들 "피해자 보호·사전 차단 조치 지나치게 허술
인신구속·전자발찌 등 가해자에 강제력 있는 조치 늘려야"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데이트폭력 살인사건 용의자' A씨가 도주 하루만인 20일 대구에서 체포돼 서울 중구 서울중부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시행 한 달이 지났지만 최근 교제 살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는 등 범죄 예방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여성이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두 차례나 긴급호출을 했음에도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숨지는 등 피해자 보호가 특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스토킹 신고 늘었지만… 교제 살인 등 강력범죄 못 막아

22일 경찰은 지난 19일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 A씨가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전 연인인 30대 남성으로부터 피살당한 사건에 대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신 한 분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고인과 유족, 국민께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A씨는 경찰로부터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사건 당일 두 차례나 긴급호출을 했지만, 신고 위치값 오류로 경찰 도착이 지연된 사이 전 연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18일까지 스토킹 신고 접수 건수는 하루 평균 103건에 달한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전 24건과 비교해 4.3배 늘었다.

법이 제정되며 신고 건수는 급증했지만, 교제 살인 등 이성 간의 집착이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일을 막지는 못한 것이다. A씨 피살사건이 있기 이틀 전인 지난 17일에는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아파트 19층에서 밖으로 던지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21일에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실형을 산 50대 남성이 출소 후 같은 여성을 또다시 스토킹하고 주거침입까지 했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에도 피해자 보호 여전히 ‘허술’

이처럼 스토킹 관련 강력 사건이 잇따르자 스토킹 처벌법과 신변보호 제도에서 피해자 보호 방안이 지나치게 허술하고 예방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사전 차단 조치가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토킹 범죄에선 사후적 처벌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스토킹을 중단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스토킹처벌법은 사전 차단 조치가 미흡하다”며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과태료와 같은 약한 사후적 처벌이 이뤄질 뿐이라 예방 효과도 거의 없고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보호명령이 빠진 점도 스토킹처벌법의 허점으로 지적됐다. 김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 명령이 빠져 피해자 보호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입법과정에서부터 있었다”며 “여성가족부가 지난 11일 입법 예고한 피해자 지원·보호 법률안과 별개로 피해자 보호 명령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토킹 처벌법에 포함됐어야 했지만, 여러 입법안에 이 같은 내용이 있었음에도 법무부가 이 부분을 빼버렸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 최일선에 있는 경찰의 대응역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A씨 사건에서도 위치값 오류뿐 아니라 최초 신고 이후 경찰의 판단과 대응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경찰의 업무는 그때그때 양상이 다르고 필요한 대응법도 달라서 획일화된 매뉴얼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스토킹 피해 신고에 따른 대응도 마찬가지”라며 “이로 인해 경찰관 개개인의 경험과 역량에 기반한 순간 판단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기가 어렵다면 메타버스 등을 활용해 경찰관들이 가상공간에서 실제처럼 합리적이고 신속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등의 교육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 “구속·전자발찌 등 가해자 대한 조치 늘려야”

경찰은 A씨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범죄대응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허술한 피해자 보호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 대한 강제력 있는 조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접근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해자를 인신구속하는 것”이라며 “사건 대응의 첫 단계인 경찰에서부터 접근금지를 확실히 이뤄낼 수 있도록 구속 조치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피해자에게만 스마트워치를 지급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워야 접근금지 실효성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윤호 석좌교수는 “경찰관이 모든 스토킹 피해자를 24시간 365일 밀착 감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시·공간적으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그 빈틈을 사람이 메울 수 없다면 기술과 기계로 완전히 메웠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접근을 인지한 후 스마트워치로 긴급호출을 하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며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때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가해자에게도 전자발찌를 채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정해진 범위 이내로 접근할 경우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고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 즉각 출동이 이뤄지도록 해야 빠르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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