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도, 부상에도 '고'..마침내 웃었다

조효성 2021. 11. 2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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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 CME투어챔피언십 우승..시즌 5승 '최고의 한해'
올해의 선수 2회·상금왕 3연패
韓 최초 기록 세우며 '해피엔딩'
할머니 임종도 못 지킨 恨 풀듯
죽겠다 싶을 정도로 연습후 연승
손목통증에 울면서도 포기 안해
2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론 골프클럽에서 열린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고진영이 트로피를 손에 든 채 기뻐하고 있다. 최종전 우승으로 고진영은 올해의 선수상, 상금랭킹 1위, 최다승 주인공이 됐다. [AFP = 연합뉴스]
'상실, 슬픔, 슬럼프, 눈물 그리고 환호.' 22일 새벽 TV를 지켜본 많은 사람은 끝까지 우승자를 알 수 없는 긴장감 속에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스윙을 할 때마다 손목 부상으로 밀려오는 통증을 참아내며 투혼의 샷을 날리는 주인공을 응원했다. 우승에 대한 집념과 많은 사람의 응원 덕분일까. 주인공은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21년 '골프 여왕' 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났다.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고진영(26·솔레어)의 202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좌절하거나 쓰러지지 않았고 독하게 버텨내 최후의 무대에서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리는 한 방을 터뜨렸다. 올해의 선수, 상금랭킹 1위, 다승 등 선수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모든 타이틀도 손에 쥐었다.

LPGA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최종일 4라운드. 여자골프 세계 1위 넬리 코르다(미국), '일본 에이스'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함께 공동 선두로 출발해 우승 경쟁을 펼친 고진영은 보기 없이 버디만 9개를 뽑아내는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합계 23언더파 265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페어웨이·그린 적중률 100%. 더 이상 완벽할 수는 없었다. 고진영은 올 시즌을 돌아보며 "다시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4승을 기록했던 2019년보다 더 달콤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고진영의 행복한 웃음은 수많은 슬픔과 역경을 이겨낸 달콤한 결과다. 이렇게 웃을 수 있을지 고진영 자신도 몰랐다.

지난 3월 고진영은 자신을 가장 아끼는 할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19로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고 영상 통화가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마음이 무거워졌고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너무 큰 상실감에 빠진 고진영은 당시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을 준비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루 3~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드라마 주인공의 숙명처럼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자 이번엔 '손목 부상'을 당했다. 프로골퍼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제대로 된 스윙을 못하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시즌 초반 10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고 100주 동안 지켜왔던 세계랭킹 1위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고진영은 "골프 사춘기를 겪는 듯하다"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고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까지 노렸지만 다시 심해진 손목 통증에 무기력하게 빈손으로 돌아왔다. 자칫 긴 슬럼프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진영은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에 머무는 한 달간 이시우 스윙코치를 다시 찾아 스윙 교정과 연습에만 몰두했다. "'이렇게 연습하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간 주니어 시절 마음가짐으로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슬픔과 부상, 슬럼프를 힘차게 딛고 우뚝 선 고진영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림픽 이후 출전한 7개 대회에서 4승을 거뒀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모든 타이틀이 걸린 마지막 대회에서도 고진영은 눈물은 흘렸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고진영은 "1라운드 11번홀에서 손목이 너무 아파 울면서 티샷을 하고 페어웨이를 걸어가는데 캐디가 '기권해도 괜찮아'라고 얘기해줬다"며 "하지만 절대 기권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정말 그때 포기하지 않아서 하늘에서 '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 우승이라는 선물을 주겠다'라고 하신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고진영이 받은 선물은 우승뿐만이 아니다. 고진영은 2019년에 이어 또 '올해의 선수' 타이틀을 따냈다. 한국 선수가 올해의 선수상을 두 번 받은 적은 없다. 또 2019년부터 3년 연속 상금랭킹 1위도 한국 여자골프 사상 처음이자 LPGA투어에서도 2006~2008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이후 14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시즌 상금 300만달러 돌파도 2007년 오초아 이후 14년 만이다.

슬픔을 이겨내고 눈물을 닦고, 슬럼프 속에서도 우뚝 선 고진영. 하지만 여전히 배고프다. "코르다도 올해 도쿄올림픽과 메이저 우승으로 잘했는데 내가 좀 더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소감을 말한 고진영은 "여전히 도쿄올림픽은 아쉽다. 다시 도쿄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의 파리올림픽이 벌써 기대되기 시작했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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