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 장애인은 어쩌다 홀로 불 속에서 숨졌나

민서영 기자 2021. 11.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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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 많은 장애인 활동지원

[경향신문]

전동휠체어 타고 다니던 68세남
65세 넘어 활동지원 대상서 제외
보살핌의 손길 공백 속 비극 맞아

22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1층 차고 옆에 딸린 방 하나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길가에는 불에 타다 만 전동휠체어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지난 16일 오전 2시30분쯤 이곳에서 불이 나 1층 방에 혼자 살던 남성 A씨(68)가 숨졌다. A씨는 하반신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었다. 불은 A씨가 살던 1층 방 안에서 시작됐다. A씨의 방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밖으로 통하는 구조다. 불은 30분 만에 꺼졌다. 같은 건물에 살던 주민 10명은 소방당국에 구조되거나 대피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A씨는 집 밖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이 동네에서 혼자 10년 넘게 살았다.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B씨는 “(사고 전) 금요일에도 뵀다. 자주 뵌다. 전동휠체어 타고 깡통 같은 거 들고 다니며 돌아다니시곤 했다”고 말했다. A씨 집과 3분 거리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C씨는 “술·담배 사러 오시는 손님이었다”며 “(거동이 불편해) 항상 슈퍼 앞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빵빵 울리면 나가서 ‘뭘 드릴까요?’ 하곤 했다”고 했다. A씨는 평소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폐지를 주워 생활했다. 휠체어에 타거나 내릴 때는 목발을 사용했다. 집 안에는 전동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해 휠체어 없이 생활했다.

혼자 사는 장애인이 화재 때 대피하지 못해 사망한 사고는 종종 있었다. 2012년 최중증장애인 김주영씨는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후 새벽에 불이 나 현관문까지 겨우 다섯 걸음을 남기고 숨졌다. 김씨의 죽음은 장애인에 대한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A씨 역시 활동지원 서비스 대상이 아니었다. 주민센터와 구청 등에 따르면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주거·생계·의료 지원을 받았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대신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를 신청해 요양보호사가 주 3회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청소를 하거나 먹거리를 준비하는 평일 낮 시간 외에 A씨는 집에서 혼자 생활했다.

A씨는 만 65세가 되던 2018년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를 신규 신청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은 활동지원 서비스 수급 자격을 ‘노인 등이 아닌 사람’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A씨는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전에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은 수급자라도 만 65세가 되면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로 갈아타야 했다.

문제는 노인장기요양 서비스와 활동지원 서비스 간 지원 시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활동지원 서비스의 경우 보건복지부에서만 하루 최대 14시간을 제공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추가 급여까지 포함하면 하루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는 주중에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이에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65세 연령제한’을 없애는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을 지난해 각각 발의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수급자가 65세가 넘어서도 계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 1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A씨처럼 65세가 넘어 등록했거나 65세 이전에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지 않은 장애인은 여전히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22일 “(정책을) 어떻게 확대하거나 진행할지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고, 여러 가지 의견을 받아들여 검토할 예정”이라며 “한정된 재원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중증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은 탓에 정책에서 소외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목발과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했는데도 ‘심하지 않은 장애’로 분류됐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의학적 판단만으로는 그 사람을 설명하지 못한다. (장애등급 판정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어려움도 같이 고려한 질적 평가가 돼야 한다”고 했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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