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준우승자의 박수
[경향신문]
숱한 화제를 뿌리고 최근 막을 내린 여성 댄서 크루들의 TV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남긴 명대사 중 하나. “저는 오늘 집에 가지 않습니다.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가 준결승 경연에서 팀이 패해 탈락한 후 한 말이다. 졌지만 최선을 다했고 대중이 더 많은 댄서를 알게 하려는 목적을 이뤘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패배 소감. 그들의 패배는 자신감이자 당당함이었다. 메이저리그 전설의 투수로 꼽히는 크리스티 매튜슨은 “승리하면 조금 배우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지난여름 도쿄 올림픽 때도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과정과 노력에 집중한 선수들이 빛을 발했다. 자신보다 앞선 상대의 실력을 존중하며 박수를 보낸 선수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결승전에서 아깝게 패해 금메달을 놓친 여자 태권도의 이다빈 선수는 승자에게 ‘엄지 척’을 해줬고 남자 유도의 조구함 선수는 상대 선수의 팔을 들어 올려 축하했다.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를 외치며 똘똘 뭉쳤던 여자 배구 대표팀도 지는 순간까지 감동을 선사했다.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패해 2위에 머문 두산이 화제가 됐다. 두산이 22일자 종합일간지들에 KT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는 광고를 낸 것이다. “KT 위즈의 우승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큰 제목을 뽑았다. 열심히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준우승팀의 광고는 더러 있었지만 우승 경쟁자였던 상대 팀을 축하한 광고는 이례적이다. 두산 선수단은 지난 18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패해 KT의 우승이 확정된 직후 3루 쪽 더그아웃 앞에 모두 나가 서서 우승 트로피를 받는 KT 선수단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고, 그 장면이 광고의 배경이 됐다.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패배는 없다고 한다. 분한 마음을 새기고 다져 설욕의 에너지로 삼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 보는 사람이라면 지금 맞닥뜨린 한 번의 패배는 다음을 위한 과정으로 여긴다. 이는 당장의 승패를 넘어서 더 중요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패자의 품격은 이런 지혜에서 나온다. 그래서 두산은 패했어도 패하지 않았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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