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무용론' 부추긴 이준석..흉기난동 사건 '젠더 갈라치기'
정치적 목적 아닌 제압 능력 봐야"
경찰의 부실대응을 '여경 문제'로
전날 '교제 살인' 사건 놓고는
"남성=잠재적 가해자 일반화 말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인천·양평의 흉기난동 사건을 언급하며 “국민은 남성·여성 관계없이 위기 상황에서 국민 재산과 생명을 지킬 경찰공무원 임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치안활동 시 제압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체력검정 등은 성비를 맞추겠다는 정치적 목적 등을 기반으로 자격조건을 둘 게 아니라 철저하게 국민 재산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치안 능력을 확인하는 게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1야당 대표가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현장에 있던 여경의 대응을 부각해 ‘여경무용론’을 주장하는 사건들을 예로 들며 ‘공정 선발’을 강조한 것은 ‘이남자(20대 남자)’ 지지를 얻기 위해 ‘젠더 갈라치기’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인천과 양평 등지에서 경찰공무원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문제로 경찰공무원의 치안 업무 수행에 국민들이 관심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에서 ‘여경’이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범죄 현장에서 드러난 경찰의 부실 대응을 ‘여성 경찰의 문제’로 일반화하는 일각의 주장을 인용하고, 이미 2026년부터 경찰 지망 수험생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체력검사 시험을 치르기로 확정한 상황에서 경찰 체력검정이 성비를 맞추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의 대표적 여성 혐오 소재인 ‘여경 무용론’에 이 대표가 동조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당시, 경찰이 자리를 이탈한 사이 피해자가 흉기에 찔리는 중상을 입어 경찰의 부실대응이 비판을 받았다. 또 지난 2일 경기 양평터미널 인근 주택가에서 흉기난동이 벌어지던 당시 경찰이 소극 대응을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현장에 있던 여성 경찰만을 겨냥해 ‘여경무용론’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퍼지던 상황이다.
지난 2019년 이른바 ‘대림동 사건’ 뒤 편집된 동영상 등을 근거로 한 ‘여경무용론’은 남초 커뮤니티의 단골 ‘여성혐오’ 소재가 되어왔다. ‘대림동 사건’은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여성 경찰관이 주취자를 제압하지 못해 시민이 수갑을 채웠다는 낭설이 짧은 동영상을 근거로 남초 커뮤니티 등에 퍼지면서 시작됐다. 실제 여경의 현장 대응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후에도 ‘여경이 물리적 힘이 약해 현장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식의 글들이 퍼졌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이 대표가 ‘공정 선발’을 이야기하는 맥락을 놓고 보면 사실상 ‘여경 선발’이 부당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교묘하게 주장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전날에도 최근 벌어진 ‘교제 살인’ 사건을 두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 논란이 된 바 있다. 성별에 따른 구조적 범죄가 핵심인 ‘교제 살인’에서는 ‘젠더’를 지우려 했던 이 대표가 이날 경찰 선발 과정을 문제 삼으며 ‘젠더’를 꺼낸 것은 ‘젠더 이슈’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남성 경찰이 문제를 저질렀을 때는 ‘남경 논란’이 발생하지 않지만, 유독 여성 경찰이 문제를 일으키면 여경 전체 무용론이 퍼지며 ‘여성혐오’가 확산된다. 남경과 여경을 보는 다른 잣대, 이것은 불공정이자 성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인천 흉기난동 사건의 경찰 부실대응과 관련해 “경찰의 최우선 의무는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라”고 경찰의 대처를 질책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는 남경과 여경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기본자세와 관련된 사안”이라며 젠더 갈등으로 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뜻도 밝혔다.
임재우 이완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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