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이대녀 대신 이남자, 이여자

이주현 2021. 11. 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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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이주현ㅣ이슈부문장

참으로 위태로운 잠이었다. 며칠 전 택시를 타고 가다가 신호대기선에서 기다리는데, 운전기사가 혀를 찼다. “아니, 저놈, 저놈, 저기서 자네!” 옆 차선에서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리던 한 청년 배민 라이더가 오토바이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렇게 피곤해도 돈 벌어야 할 사정이 있겠지, 가여운 마음이 이는데, 중년의 운전기사는 야멸차게 비난했다. “아니, 피곤하면 콜 끄고 집에 가야지. 도대체 왜 저러고 있어?”

이 위험한 장면은 최근에 본 글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030 남자를 다룬 글.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일독을 권했다가 사달이 난 글, ‘2030 남자들이 홍준표를 지지한 이유’였다. 4050 민주당 지지자가 쓴 듯한 이 글은 젊은 남성들이 민주당에 등 돌린 이유로 ‘페미니즘’을 첫손에 꼽는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페미 정책과 차별화에 성공한다면 이대남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진단이 틀렸으니 해법도 틀렸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비판도 마땅하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인상적인 지점이 있다. 필자는 페미니즘 탓을 하면서도, 실제론 2030 남자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이유를 계급에서 찾고 있다. 글 첫머리에서 2030 남자들을 “명문대를 다니거나 대기업에 다니거나 건물주 아버지를 둔 극소수를 제외하고 이들은 수많은 아르바이트 등에 시달리면서 각종 갑질을 당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러면서 필자는 “20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가 일단 이들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 줘야 한다”고 말한다. 요 부분은 옳은 말이다.

다만, 문제는 2030 여자들 역시 2030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와 갑질에 시달리고 있음을 종종 잊는다는 사실이다. 2030 여자들과 2030 남자들을 너무 이질적인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대남-이대녀는 이렇게 한국 사회의 인식 양극단에 놓이게 된 걸까.

올 3월 <경제와 사회>에 실린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세대의 이념성향과 젠더의식 비교를 중심으로’(최종숙)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 20~40대 남녀 565명에게 고정적인 성역할과 관련한 질문, 즉 남성의 육아, 여성 직장 상사 수용도를 물었는데 20대 남자들은 30~40대 남자들보다 훨씬 성평등한 의식이 높았다. 항목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20대 여성이 성평등 의식 항목 점수 값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20대 남성이었다. 그러나 각 세대 집단에게 ‘우리 사회에서 성별 갈등이 얼마나 심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30대는 67%, 40대는 61%가 갈등이 심하다고 답했으나, 20대는 84%나 됐다. 남(85.4%), 여(83.3%) 성별 차이도 별로 없었다. 즉, 20대는 성별에 따른 갈등 상황은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남녀 모두 이전 세대보다 훨씬 균질하게 성평등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조사 결과는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던진다. 통념과 달리,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내재화한 고정된 성역할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남녀 공존의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한 것은 희망적인 일이다. 성별에 따라 그어진 격렬한 대립 전선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는 안타까운 정도이지 절망할 정도까진 아니다.

절망의 내용은 정치에서 비롯된다. 2030 남성들의 표를 단단히 붙들어매기 위해 남녀를 끊임없이 갈라치는 국민의힘의 행태 말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2030 남성들이 모두 떠나갈까 봐 급한 마음에 우왕좌왕 흔들리는 이재명 후보의 모습도 절망적이긴 매한가지다. 정치인들의 선거 공학엔 ‘이대남’과 ‘이대녀’만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선거를 왜 하는가.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을 바꾸기 위해서 아닌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첫 한국인들이면서도 지방-서울,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격차에 심신이 멍드는 ‘이남자’ ‘이여자’의 ‘오늘 하루’를 들여다보자. 부디, 배달 청년이 안전하게 귀가했기를.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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