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갈라파고스가 된 '도심 속 IBS'

이준기 2021. 11. 22. 18: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이렇게 좋은 땅에 웬 연구소가….", "엑스포가 열린 대전의 상징과도 같은 곳에 연구소가 있었어…."

대전지역 토박이들이나 대전에 오래 거주한 시민들은 갑천변 도로를 지날 때마다 이색적인 낯선 풍경에 의구심을 자아내곤 한다. 일부 시민들은 "백화점과 고층 빌딩, 그리고 대로(大路) 한 폭에 시끄럽게 무슨 연구소"라며 혀를 차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한다.

올해 개원 10주년을 맞은 기초과학연구원(IBS)이 3년 전 대전 유성구 도룡동(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린 엑스포과학공원 일대)으로 이전한 후부터 이 곳을 오가는 대전 시민들은 이 일대의 생경한 변화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말 IBS 옆에 신세계백화점과 45층이 넘은 대전 엑스포타워가 새로 들어서면서 원도심 시민은 물론 대전 근교에 거주하는 타 도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반응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대전 신도심 중의 '최고 노른자 땅'으로 이전한 IBS는 당시 영국 런던의 프랜시스 크릭연구소와 미국 코넬대 뉴욕시 캠퍼스, 독일 아들러스호프 등 과학 선진국처럼 '도심 속 과학연구소'를 만들겠다고 분위기를 띄었다. 겉으로 내세운 기치는 IBS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이 되려면 뛰어난 정주 여건과 편리한 도심 인프라, 우수한 연구환경 등이 갖춰진 도심에 있어야 우수한 국내외 과학자 유치가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대전 시민 역시 대전이 '글로벌 과학기술 도시'로 한 단계 스케일 업(Scale-up)할 수 있다는 점에서 IBS의 결정을 반겼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도시 모델과 부가 가치를 만들어 지역 사회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새로운 혜택과 기회, 다양성을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의 유효기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물론, 그 원인 제공자는 IBS였다. 도룡동 이전 이후 IBS는 지역 사회와 연계, 소통에 그닥 적극적이지 않아 보였다. 엑스포 도심을 관통하는 갑천의 수려한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IBS 과학문화센터를 대전 시민에게 개방하고, 과학도시를 알리는 공간으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전시와 운영 인력과 운영비 마련 등을 이유로 '핑퐁게임'을 하는 사이 당초 약속은 유야무야됐다. 이 와중에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문을 닫으면서 IBS 과학문화센터는 내부행사 장소로 용도변경된 채 대전 시민들에겐 '언감생심' 공간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심지어 드넓은 녹지 공간에 조성된 IBS는 정문을 조금 지나면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트가 24시간 내려져 있어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주말과 휴일이면 길 건너에 있는 엑스포시민광장에 가족, 친구, 연인 단위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과 달리, 길 하나로 맞닿아 있는 IBS는 인적이 드문 전혀 다른 공간으로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공간적 단절은 IBS가 이 곳으로 이전해 온 3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달 초 IBS가 진행한 개원 10주년 행사 면면을 봐도 마찬가지다. 모든 행사 프로그램이 그들만을 위한 것일 뿐, 지역과 연계한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기획되지 않아 씁쓸함을 더해줬다. 이렇다 보니 IBS가 개원 10주년을 맞은 지 아는 대전 시민은 거의 없을 법도 하다.

더욱이 지난 19일에 열린 개원 10주년 기념식에 다른 일정 관계로 허태정 대전광역시장 대신 부시장이 참석해 축하하긴 했지만 일련의 상황을 볼 때, 지역에 소홀히 해 온 IBS에 대한 섭섭한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과연 IBS가 당초 그렸던 '도심 속 기초과학연구소'가 지금과 같은 이런 모습였을까.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도심 속 과학연구소'는 오래 기간 지역사회, 지역민과 긴밀한 교류와 소통을 통해 지역과 호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지역 사회와 시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내 세계적인 '도심 속 과학연구소'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원 10주년을 계기로 IBS도 지역에 진정성 있게 한 발 더 다가가 지역 공동체의 소중한 혁신 주체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대전 시민들은 '대한민국 대표 연구기관이자 세계를 선도하는 기초과학연구소'로 도약하는 IBS에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낼 것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