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주권자 국민이 중심인 소통, 왜 안 되나

2021. 11. 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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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우리에게 격동의 세월이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하다. 지난 100년 동안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단 1년도 없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새로운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였고, 각종 위기를 초래한 것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의 노력을 결집해내는 것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성공한 대통령이 없고, 대통령에 당선될 때의 환호와 달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박수받은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어떤 대통령도 특정 집단, 특정 진영의 존경을 받은 경우는 있어도 전체 국민의 존경을 받지는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대통령이 진영 간 대립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대통령을 종교의 교주처럼 생각하고 따르는 팬덤 정치가 뚜렷해지면서 마치 박근혜 교와 문재인 교의 종교전쟁처럼 대립이 극단화된 것이다.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결국 진영 간 갈등의 해소에 나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국사태' 등을 통해 진영 간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최근 시민단체 일각에서 '대권 없는 나라' 운동이 시작되었을까.

최근 진영 간의 갈등은 오히려 김영삼-김대중 당시보다 더욱 날카로우며, 과거의 망국적 영호남 갈등 이상으로 파괴적이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의 성과가 일거에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1987년 이후 민주화되었다는 점을 과신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그 이전에 비해 민주화된 것은 맞지만,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발전시켰던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에서도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크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성취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잘못 판단했던 건 아닐까?

주목할 점은 서구의 민주주의도 최근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당선, 프랑스의 마크롱 당선, 독일의 급진정당 약진 등은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크게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올바르게 해소하지 못할 경우에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전의 안철수 신드롬이나 현재의 윤석열 지지율 등은 국민들의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의제의 한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도 최근 많은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오히려 국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출발점, 즉 국민주권으로 돌아가서 이를 어떻게 실질화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의 정치적 조건 하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고도로 전문화 복잡화된 국가사무를 직접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의제가 보편화되었다. 그렇다고 국민이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한 것도, 책무를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충분히 자각하고 있는지, 주권자로서의 책무를 위해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자문(自問)해 보야야 한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제로 바꿀 수는 없지만, 국민의 적극적 역할에 따라서 보완하고 강화할 수는 있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국정에 반영되고, 국민이 국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중심에 서는 소통이다. 최근 대통령들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으나 제대로 성공한 예는 찾기 어렵다. 권력자의 위치에서 소통한다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시혜적 소통이 아니라 주권적 국민이 주체가 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소통이 얼마나 성과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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