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中의 수 못 읽었던 키신저 "10년 간 대만 공격 없을 것"

이철민 선임기자 2021. 11. 2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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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98)은 20일 미 CNN 방송의 한 대담 프로그램에서 “내가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기간이라 할 앞으로 10년간 중국은 타이완에 전면 공격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최근에 저술한 AI(인공지능) 책과 관련해, 20일 CNN 방송의 'On GPS' 프로그램에 나온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CNN 스크린샷

그는 대담자인 파리드 자카리아에게 “타이완과 중국을 합쳐 하나의 중국을 만드는 것은 중국 정책의 목표”라며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인데 일본이 무력으로 떼어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러한 목표는 지금 정권이나 어떠한 중국 정부에게도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는 “바이든이 모든 사람이 중국에 대해 ‘매파’가 되려는 미 국내 정치적 제약 속에서 중국과 영상 정상회담을 했다”며 “바이든은 중국과 공통된 분야에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레벨을 찾으려고 하는 등, 중국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매파와는) 다른 기조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중국은 꽤 부유하고 강하고 적극적인 나라가 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미‧중 양국의 최대 과제는 상황을 재앙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 경쟁하는 관계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의 이같은 진단은 현재 많은 미국 내 군사‧안보 전문가들의 우려와는 다르다. 많은 전문가들과 국제정치학자들은 “중국의 파워가 모든 면에서 이미 정점(頂點)을 찍고 있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타이완 통일의 적기(適期)를 놓칠까봐 고민하는 앞으로 10년이 가장 위험하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물론 누구도 중국의 타이완 공격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으며, 키신저의 진단은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 나름대로의 예측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세기동안 중국 내부를 관찰해 온 미국의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마이클 필스버리는 키신저는 미국 측에서 미‧중 수교(修交)의 물꼬를 텄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오쩌둥의 수를 읽지 못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많은 사람은 1971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미국이 양국 관계의 개선을 주도했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판을 깐 것은 중국이었다. 닉슨이 중국에 간 것이 아니라, 중국이 먼저 닉슨에게 왔다. 필스버리 자신도 단역(端役)으로서 키신저의 대중(對中) 협상을 도울 때만 해도 대중 온건파였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접촉과 중국 내부 문서를 확인하며 중국의 적의(敵意)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필스버리가 2016년 발간한 '백년의 마라톤.' 같은 해 국내에서도 번역 발간됐다.

2016년에 발간된 필스버리의 저서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에 따르면, 중국은 1969년 8월 소련과의 관계가 국경 무력 충돌 등 최악으로 치닫자 새 ‘후견인’이 필요했다. 마오쩌둥은 닉슨을 베이징으로 초대하고, 소련 인접 지역에서 예고 없이 두 차례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 미국의 손을 잡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미국은 무(無)반응이었다. 마오쩌둥은 1970년 1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미국 기자 에드거 스노를 베이징으로 불러, 다시 초청 메시지를 전했다.

왜 미국은 둔감했던 것일까. 당시 닉슨과 키신저의 관심은 온통 유럽에서 시작한 소련과의 군축(軍縮)‧평화 협상이었다. 공연히 중국에 ‘추파’를 보냈다가, 이 군축 분위기를 깰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중국은 1971년 7월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한 키신저에게 닉슨의 정적(政敵)이라 할 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이 베이징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적을 갈라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중국 전국시대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닉슨은 중국 측에 자신이 중국에 방문하기 전에, 어떤 미국인도 초청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을 ‘협력자’가 아니라, 자신이 패권을 장악할 때까지의 ‘장애물’로 봤다. 협상 과정에서, 저우언라이는 “미국은 ‘패(覇)’”라고 키신저에게 말했다. ‘패’를 자처하는 나라는 새롭게 ‘패’가 등장하기까지만 천하의 질서를 정한다. 그러나 당시 중국 측 통역은 ‘패’의 의미를 알려주면 키신저가 불쾌할까봐 ‘리더’라고 통역했다고, 필스버리에게 말했다.

이후 미국은 소련의 핵무기‧군사력 배치 상황, 소련의 공격을 감지할 조기 경보용 하드웨어와 중국군 지원, 특정 레이더 제조 기술 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오히려 중국이 미국과의 ‘동맹’으로 비칠까봐 머뭇거릴 규모의 ‘퍼주기’였다.

중국에게 대미(對美) 협력은 두 ‘전국(戰國)’의 전략적인 협력이었지만, 키신저는 닉슨에게 “영국을 제외하면, 중국이 글로벌 인식에서 우리가 가장 근접한 나라”라고까지 말했다. 중국의 전략에 대한 의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은 과학‧기술에 중점을 둔 덩샤오핑의 주문을 그대로 받아, 유전자공학‧수퍼컴퓨터에서 우주공학에 이르는 전 분야에서 매년 수만 명의 중국인 과학자들을 미국에서 길러냈다. 1985년 레이건 행정부는 중국 군부에 10억 달러어치의 주요 무기 시스템을 판매하기도 했다.

2005년~2018년 미국 대학의 농학-생물학-컴퓨터-공학-수학 및 통계학-물리학 등 이른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대학원 과정에 등록된 중국 유학생 숫자. /출처: Center for Security and Emerging Technology 2020년 10월 정책 보고서

필스버리는 “덩샤오핑은 미국을 앞설 유일한 길은 대대적인 과학기술 개발이라고 믿었지만,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과학 분야 교류를 집요하게 원하는 중국의 관심을 단지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신호로 여겼다”고 썼다. 이후 2001년 중국의 WTO(국제무역기구) 가입을 비롯해,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까지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여기며 얼마나 일방적으로 퍼줬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하면서, 이제 중국은 ‘패’인 미국을 직접 상대해야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의 이런 세(勢) 읽기를 알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역대 미 행정부가 저지른 대중(對中) 착각의 원인을 위대한 전략가인 키신저에게만 돌리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키신저는 그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 그가 이제 “중국은 향후 10년 내 타이완을 전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미‧중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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