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플레이 듣는 피아니스트 박재홍 "진짜 꿈은 지휘"

임석규 2021. 11. 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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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 5관왕
'에너지 뿜뿜' 22살 피아니스트
지난 9월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그는 지난 19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 피아니스트 박재홍(22)이 들어섰다. 큰 키에 당당한 체격, 한눈에 봐도 ‘출중한 피지컬’이었다. 지난 9월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 우승 당시 그가 왜 그토록 체력 소진이 크다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결선 곡으로 골랐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부모님이 187㎝의 큰 키를 물려주셨다. 손가락도 길어서 12도(도에서 다음 옥타브 솔까지)는 편하게 짚는다.” 키가 198㎝였던 라흐마니노프는 13도까지 눌렀다고 전해진다.

부소니 콩쿠르는 깐깐하기로 유명하다. 올해 63회째를 맞았는데, 그동안 31차례 대회에서 ‘1위 없는 2위’만 발표했다. 박재홍은 올해 대회에서 1위 외에 부소니 작품 연주상, 실내악 연주상 등 5관왕을 휩쓸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막연한 두려움에 한숨밖에 안 나오지만 첫 음을 누르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완벽하게 세공된 디테일로 가득 찬 거대한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 즐겁게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부소니 콩쿠르 2차 본선 때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함머클라비어)에 대한 그의 평이다. 음악에 대한 추상적 느낌을 세밀화 그리듯 현란한 언어로 능숙하게 표현해낸다. 대단한 달변이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부소니 콩쿠르에서 연주하고 있다. 부소니 콩쿠르 제공

“운전할 땐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의 시디를 자주 듣는다. 콜드플레이, 라디오헤드 같은 록 음악도 좋아한다. 책도 꽂히면 반복해서 읽는다. 카뮈의 <이방인>은 일곱번,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열번도 넘게 읽었다. 탁구, 체스도 좋아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하하하~.” 관심사가 다양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순수 국내파’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그의 스승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9년째다. “(김대진) 선생님 제자라는 게 가장 큰 행운이다. 외국 콩쿠르에 나가도 다들 부러워한다. 선생님은 ‘피아노는 생긴 대로 치는 법’이란 말씀을 자주 하신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 등 많은 걸 배웠다.” 스승의 제자 사랑도 끔찍하다. “솔로 연주뿐만 아니라 반주, 실내악,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토털 뮤지션’이다.” 김대진 총장이 제자의 우승 소식을 듣고 전한 메시지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지난 19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지난 19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박재홍은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와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했다. 부소니 콩쿠르 본선에서 연주했던 곡들이다. 제자의 연주를 가만히 지켜본 김대진 총장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박재홍은 22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몰입해서 쳤는데 선생님이 연주회 끝나고 격려해주셨다”며 “베토벤을 칠 때면 나를 없애려고 한다. 끼어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박재홍은 수원에 앞서 대구, 진주, 부산에서도 연주회를 했다. 내년도 국내외 연주 일정도 빼곡히 들어찼다. “내년 6~7월 빼곤 거의 다 일정이 잡혔다. 계속 연주 요청이 들어와 행복하게 준비 중이다. 음반 작업도 시작했는데, 이달 말쯤 통영 음악당에서 녹음에 들어갈 거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로는 국내에도 팬이 많은 언드라시 시프와 머리 퍼라이아를 꼽았다. “동경하는 연주자가 변하기도 하는데 두 분은 늘 좋아하는 것 같다.” 두 사람 연주를 참고하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떤 곡을 치기 시작하면 다른 연주자의 음반은 듣지 않으려 한다. 듣다 보면 그 연주가 뇌리에 박혀 따라 하고 모방하게 된다. 그건 독이 든 성배 같은 거다. 무의식중에라도 그분들의 좋은 연주를 도굴꾼처럼 빼내가는 것 같아서 싫다. 약간 죄책감이 느껴져서 말하는 건데, 템포는 한번씩 들어보려고 했다. 내가 제대로 된 속도로 치고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 템포의 레퍼런스들만 찾아서 들어보곤 했다.”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부소니 콩쿠르 제공

“영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겸연쩍어했지만, 그는 대구예술영재교육원 출신이다. “영재교육에서 체계적 커리큘럼도 좋지만 화성학이 도움이 됐다. 중요한 수업들을 많이 받아서 젊은 학생이 다양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당찬 연주처럼 포부도 다부졌다. “지휘는 정말 하고 싶은 꿈이다. 콩쿠르 우승 상금으로 베토벤 교향곡 9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6곡의 악보를 다 구입했다. 지휘 공부를 위해서다. 그런데 아직 김대진 선생님이 말리신다. 하하하~.”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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