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키운 9할 '성남시절'..유능한 행정가로 성장 발판
어려운 환경서 성장한 李후보
주경야독하며 변호사로 성장
성남서 사람 돕는 길 선택해
도시개발 역사의 산증인으로
극도의 실리주의 추구하게돼
시장땐 '일 잘한다' 평 받으며
보수 텃밭인 분당서 큰 인기
조폭 연루설 등에 휘말리기도
◆ 여야 대선후보 분석 ◆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그들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는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떤 철학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해갈지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가치관을 형성한 요인으로 성남시와 검찰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조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후보의 이력은 변호사와 검사로 대비된다. 이 후보는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약자를 대변하다 성남시장으로 당선되면서 행정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윤 후보는 상명하복과 승진 경쟁이 치열한 검찰만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소신 있는 검사로 주목받으며 검찰총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성남시와 검찰문화를 통해 후보들을 재조명해 보았다.
"우리 공동체에 합의된 룰을 일부 어겨 가면서 이 주장을 세상에 알리는 것조차도 더 큰 효율성이 있을 수 있죠. 응원합니다. 저는 그런 식의 삶을 응원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공공문화도시재생 앵커시설 '신촌, 파랑고래'에서 청소년·청년 기후활동가 및 대학생 20여 명과의 간담회에서 했던 이 발언은 규칙을 어기면서 주장을 알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논란이 됐다. 이 후보는 청년 기후활동가들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는 '덕담' 차원에서 한 말이지만, 야당에서는 "목적을 위해 불법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소년공' 출신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정치적으로도 '비주류'였던 이 후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더 큰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기득권의 목소리가 강하게 반영된 룰을 일부 어길 수 있다는 인식이 투영돼 있는 듯하다. 그가 겪어 온 세상과 지금도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기득권이 정한 룰 때문에 때로는 희생을 치르고라도 법을 어겨야 하는 상식적이지 않은 곳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지난 13일 공개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게 진짜 제 꿈"이라고 말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세상에 맞서기 위해 '때로는 룰을 깨고 싸우고 투쟁'하면서 이 후보는 인권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기존 프티 부르주아적 386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행동하는 서민적 대중 정치인의 이미지와 명성을 쌓았다. 이 후보는 유튜브에서 "내가 왜 남들 일에 이렇게 목숨 바쳐 쫓아다닐까. 한 번 생각해 봤다"며 "내가 자랐던 웅덩이, 웅덩이를 좀 안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은 것, 그게 많이 작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큰 웅덩이 중 하나는 경기 성남시다. 성남에서 만난 사람과 겪었던 환경은 현재 이재명의 정치철학에 녹아 있다. 성남은 대한민국 도시개발 근대 역사의 아픔과 그늘을 담고 있다. 1968년 서울시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현재 성남) 350만평을 개발해 공단과 생활시설을 건설해 50만명이 살아갈 수 있는 자족도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박정희정부는 빈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도시 미화'를 위해 서울시에 산재한 판자촌을 철거해 주택, 도로 등 도시 기본시설이 건설되기도 전에 강제 이주시켰다. 1976년 이 후보가 경북 안동시 예안면을 떠나 자리 잡게 된 곳은 강제 이주민이 살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월세를 살며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던 이 후보는 "당시를 회상하면 이사했던 기억밖에 안 난다"고 할 정도로 거주 환경이 불안정했다. 특히 이 후보 아버지의 '집을 가져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안동에서 올라와 학교에 가는 대신 공장을 다녀야 했던 이 후보로서는 집에 대한 애환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신림동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며 이 후보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꿈과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평가했다.
낮에는 공장을, 밤에는 학원을 다니며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이제는 '도시 빈민'의 삶에서 벗어나 판검사를 하며 소위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성남으로 돌아와 변호사사무소를 차렸다. 사법시험 합격 후 1986년 11월 4일자 경인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성남에서 변호사사무실을 열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공장에 같이 다녔던 동료와 주변 사람들이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성남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가 많다"는 이 후보는 누구보다 그들의 사정을 알고 그들의 생활과 아픔에 공감하면서 다소 과격해 보일 때도 있지만 행동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금융 같은 기본 시리즈도 결국 이 후보 자신의 웅덩이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빈민 도시 성남은 분당·판교 개발로 달라졌다. 1990년대 초 1차 신도시 개발 후 살기 좋은 도시로 분당을 가리켜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후 판교가 개발됐다. 성남은 '제2의 강남'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성남 도시개발의 역사 한가운데에 있던 이 후보에게는 '명'과 '암'이 함께 새겨졌다. 성남에는 2000년을 전후해 신도시 개발과 구시가지 재개발이 본격화하면서 각종 이권과 구도심 유흥가 등을 배경으로 서울에서 밀린 조직폭력배가 암약했다. 이 후보가 이곳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조직폭력배 연루설이 끊임없이 따라붙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0일 양당 후보 간 첫 조우에서 이 후보에게 "우리가 이십 몇 년 전에 성남에서, 법정에서 자주 뵀다"고 말했던 것도 이 후보의 조폭 연루설을 부각시키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성남 도시개발 중 벌어진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관련 내용을 취재하던 방송국 PD가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과 통화하면서 검사를 사칭하고 대화를 녹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후보는 당시 PD를 도운 혐의로 15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 후보는 룰을 어겨 처벌을 받았지만 행동에 나서서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효용성 면에서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 후보가 유능한 행정가라는 명성도 성남시장을 통해 얻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 후보를 보좌하고 있는 김남준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시장 당선 후 좌클릭을 하거나 우클릭을 해서가 아니라 이 후보가 하는 행정이 실제로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통해 보수 지역이라 불리는 분당에서도 지지율을 견인했다"며 "폭설이 내린 날에는 성남시와 용인시 경계 도로에서 성남시 부분부터 열심히 제설을 하고, 무상복지를 통해 성남시가 살고 싶은 도시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가 처음 당선될 때만 해도 수정구, 중원구 등 구도심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분당구에서는 44.63%를 기록해 당시 한나라당 후보(50.6%)보다 뒤졌다. 하지만 2014년 재선 때는 이 후보가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분당구에서도 지지율 53.8%를 이끌어 냈다.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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