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범벅 무용수, 춤으로 그릇 빚다

오수현 2021. 11. 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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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형유산원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도예작업·매듭맺기 등
무형유산과 무용의 만남
장인정신을 춤으로 표현
내면의 에너지를 시각화
창작 전통무용극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 공연 모습. [사진 제공 = 국립무형유산원]
어느 것이 흙사발이고, 어느 것이 사람인가.

지난 19~20일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 무대에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보유자 김정옥(79)이 등장했다. 사기장이란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그릇을 제작하던 장인을 말한다.

그가 30여 분에 걸쳐 찻사발 11개를 빚어내는 동안, 그의 뒤에선 현대무용단 김용걸댄스씨어터 무용수들이 장인의 도예 과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무용수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흙범벅이었다. 옅은 황톳빛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만났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이들 춤은 형태가 없는 흙덩어리가 점점 농밀한 자태를 드러내는 과정과 흡사했다.

김정옥 사기장은 전기물레를 거부하고 아직도 발물레를 고집한다. 그릇을 빚는 동안 그의 발은 쉴 새 없이 물레를 돌렸고, 손은 흙기둥을 보듬어 찻사발을 올리길 반복했다. 그의 작업 내내 뒤에서 펼쳐진 군무는 장인의 도예 작업에 응축된 에너지와 밀도를 시각화한 듯 힘차면서도 섬세했고, 동작은 크고 작아지길 반복했다.

점차 도공의 도예 작업과 무용수들 춤은 같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흙 물레와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의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는 피루엣 동작이 혼연일체를 이뤘다.

김 사기장은 "공연 리허설 때 본 무용수들 춤을 떠올리며 그릇을 하나하나 빚었다"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붙었다. 신나게 물레를 돌렸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손-흙과 실의 춤'은 무형유산과 현대무용 간 접목을 시도한 국립무형유산원의 창제작이다. 사기장 보유자 김정옥과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77)의 무형유산을 현대무용으로 시각화했다.

안무를 맡은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많은 무형문화재 중 사기와 매듭이 갖고 있는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두 명인이 무대에서 풀어낼 장인정신을 어떻게 더 부각시켜 관객들에게 전달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공연 전반 도예와 춤의 만남이 황톳빛 무대였다면, 공연 후반 펼쳐진 김혜순 매듭장과 현대무용과의 만남은 보라, 초록, 분홍 등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었다.

김혜순 매듭장은 염색을 마친 실을 합사(合絲)하고 끈틀에 앉힌 뒤 끈을 짜기 시작했다. 10여 개의 토짝을 일정한 리듬과 속도에 맞춰 교차시키며 끈을 짜는 장면은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듯 경쾌하고 리드미컬(율동적)했다. 이 순간 김 매듭장은 공예가이면서 음악가였다.

뒤에선 실의 색과 동일한 4가지 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제각각 어지러운 군무를 펼치며 실이 얽히고설켜 매듭이 탄생하는 과정을 춤사위로 표현했다. 김 매듭장은 "끈을 짤 땐 늘 리듬을 탄다"며 "토짝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음악처럼 아름답게 들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용수들 동작과 매듭이 탄생하는 과정이 조화를 이뤘다"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모습에 관객들이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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