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독식 경기에서 인생 스코어 기록 '승부사' 고진영.. 드라마 같았던 올 시즌 화려한 피날레
고진영(26)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21시즌 최종전에서 대역전극으로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고진영은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 다승왕 등 개인타이틀 3관왕의 주인공도 됐다. LPGA 투어 상금왕 3연패와 올해의 선수 2회 수상은 ‘골프여왕’ 박세리와 박인비도 이뤄내지 못한 한국인 최초의 금자탑이다.
고진영은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 티뷰론GC(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만 9개를 낚는 맹타를 휘몰아치며 9언더파 63타를 적었다. 최종합계 23언더파 265타를 기록한 고진영은 2위 하타오카 나사(일본)를 1타 차로 꺾고 우승컵의 주인공이 됐다. 고진영과 세계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넬리 코다(미국)는 17언더파 공동 5위로 마쳤다.
지옥과 천당 맛본 고진영의 2021시즌
고진영의 2021시즌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2019·2020시즌 상금왕을 차지해 순조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고진영의 올 시즌은 '고난'으로 시작됐다. 이른 봄, 자신을 아껴주던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 고진영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당시 그는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를 준비하느라 한국에 가지 못했다. 우느라고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잤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골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큰 상실감은 집중력 저하를 야기했고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올 시즌 상반기에 그는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골프 사춘기를 겪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고진영을 단련시킨 건 도쿄올림픽의 부진과 라이벌의 금메달 획득이었다. 코다에게 세계랭킹 1위를 빼앗긴 채 출전한 도쿄올림픽에서 코다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승부수를 띄웠다. 코치와 클럽을 모두 바꾸고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AIG 위민스 오픈 출전도 포기했다. 고진영은 국내에서 오전 8시부터 저녁 늦도록 연습만 했다. 그는 “'이렇게 연습하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했다. 주니어 시절 마음가짐으로 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국내에서 맹훈련을 하며 ‘송곳 아이언’을 되찾은 고진영은 9월 치른 포틀랜드 클래식 우승을 시작으로 ‘고진영답게’ 돌아왔다. 9월 이후 치른 대회에서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더니 10월 코그니전트 파운더스컵 우승과 국내에서 열린 BMW 챔피언십에서 시즌 4승째이자 한국인 선수 LPGA 투어 통산 200승의 주인공에 등극했다.
손목 통증에도 커리어 베스트 스코어 기록
고통의 눈물로 시작했던 고진영의 시즌은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우승과 함께 환희의 눈물로 마무리했다. 완벽한 피날레였다.
라이벌 코다와의 숨막히는 ‘승자독식’ 대결은 승부사 고진영의 완승이었다. 이 대회 전까지 올해의 선수상과 상금왕 부문에서 코다에 근소하게 처져 있던 고진영은 두 부문 모두 역전에 성공했고, 시즌 다승에서도 코다(4승)를 1승 차로 밀어냈다.
5월부터 안 좋았던 왼 손목 상태가 이번 대회 들어 악화돼 정상적인 경기가 어려웠는데도 고진영은 마지막 날 9언더파 63타라는 ‘커리어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했다. 고진영은 이번 대회 1라운드 11번 홀에서 손목 통증 때문에 눈물까지 흘렸고, 캐디인 데이비드 브루커가 "기권해도 좋다"고 말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럼에도 고진영은 대회 첫날 9번홀부터 마지막날 18번홀까지 63개홀 연속 그린적중률 100%를 보일 정도의 샷 정확도를 보이며 상대 선수들을 압도했다. 코다 역시 고진영의 경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다는 경기 후 “솔직히 오늘은 ‘고진영 쇼’였다. (같은 조에서) 그저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고진영은 최종 합계 23언더파 265타로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면서 올해의 선수(211점)와 상금왕(약 350만2,000달러)을 역전 수상했다. 세계 랭킹 1위 탈환도 기대된다. 올해의 선수 2회 수상(2019·2021년)과 상금왕 3연패 모두 한국 선수 최초 기록이다. 고진영은 통산 12승으로 한국 선수 최다승 공동 3위(김세영)로도 올라섰다. 25승의 박세리가 1위, 21승의 박인비가 2위다. 시즌 5승으로 다승도 1위인데 7월부터 9개 대회에서 5승을 쓸어 담았다. 승률로 따지면 무려 55.5%다.
고진영은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려면 최소 준우승을 하고 코다의 성적을 지켜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코다보다 운이 조금 더 좋았던 것 같다”며 “시즌 초반 슬럼프 때는 다시 우승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5번이나 우승해 2019년보다 더 기쁜 한 해를 보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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