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46)AI시대에도 통일은 필요한가

2021. 11. 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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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경제위기와 주민이탈로 궁지에 몰린 동독 공산당은 부득이 여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동독 주민에게 여행허가증·여권 발급을 간소화하고 여행 규제를 '다소' 완화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동독 주민 여행자유화를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고, 놀란 기자들이 시행일을 묻자 '지금 즉시'라고 답했다. 방송을 지켜본 동독 주민들은 그 길로 뛰쳐나가 1961년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우리나라 헌법은 동포애와 민족단결로 자유민주 질서에 입각해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한다. 이를 위해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법률을 두고 있다. 한반도 허리가 끊어진 지 70년이다. 나고 자란 곳을 함께하던 분들은 거의 남지 않았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데 북녘 동포를 알아야 할까.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시달리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합작사업은 중단됐다. 각자 잘살면 안 될까.

미래는 데이터,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기반한 과학기술·정보통신 사회다. 북한도 대북 제재로 한계가 있지만 소프트웨어(SW)·클라우드·AI 등 과학기술·정보통신에 투자하고, 평양과학기술대학 등 교육열도 높다. AI시대 통일의 의미를 살펴보자.

독일 통일은 참고가 될까. 한 민족이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었다는 것은 우리와 같다. 다만 6·25 같은 동족 간 전쟁은 없었다. 동독은 베를린에 장벽을 설치했을 뿐 다른 나라와 인접해 있어서 주민들의 이동을 막기 어려웠다. 세계 열강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서독의 통일 노력을 방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이 통일에 비용을 많이 쓰도록 방관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독일과 다르다.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어서 통일해야 할까. 민족은 혈통·역사·언어·공간·문화 등을 함께하는 공동체다. 외세 극복이나 집합 역량이 필요할 때 강조됐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통일해야 할까. 데이터·AI시대는 세계를 시장으로 기술 표준, 자유롭고 안전한 데이터 이동 등 원만한 국제협력과 질서를 전제로 한다. 많은 외국인이 국내에 생활 터전을 마련했고, 다문화가정도 늘었다. 폐쇄적·배타적일 수 있는 민족 개념에 의존하는 것으론 통일이 어렵다. 주변 강대국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다. 오히려 정치·경제·외교 '밀당'을 통해 실리를 찾아야 한다. 국제질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남북협력과 통일의 판을 짜야 한다.

물론 남북이 서로 주도권을 거머쥐려 하거나 강대국들이 이권을 요구하면 통일은 오히려 어려워진다. 더욱이 남북 정권 가운데 한쪽이 권력을 내놔야 한다면 그 통일이 가능할까. 흙과 물로 이뤄진 영토가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 온라인·모바일, 데이터·AI로 세계를 영토로 해서 공유할 수 있다. 글로벌 디지털경제라는 큰 틀 아래에서 남북협력이 중요하다. 남한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우수한 디지털 인재는 필요하다. 남북이 협력해 세계시장에서 세계 정부·기업과 협력한다면 굳이 통일을 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북한 개성이나 중국 동북부 등지에서의 기업 협력, 금강산 관광,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남북협력 모델이 있었다. 상대방을 이용 목적으로 만나 정치·외교 문제로 비화하거나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사업은 중단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 강국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든 메타버스든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남북 주민이 만나면 어떨까. 대북 제재 대상도 아니다. 접촉 대상, 범위 등 당국이 통제해도 좋다. 온라인에서 만나 평양은 어떻고 서울은 어떻고, 백두산은 어떻고 한라산은 어떻고 하며 얘기해 보자. 목적 없이 만나자.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좋아지고, 답도 함께 찾게 된다. 통일은 억지로 하려 할수록 멀어진다. 서로 알 기회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 통일은 도둑처럼 찾아온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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