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 중 피살된 여성, 경찰에 5차례 신고했지만..

김문희 2021. 11. 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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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간 경찰에 스토킹 피해 5차례 신고
경찰, 구두 경고 조치..피해자엔 스마트워치 지급
피해자, 스마트워치로 사건 당일 2차례 긴급 신고
피의자 A씨, 구속 여부 이르면 오늘 결정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씨(35)가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경찰의 신변보호 중 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30대 여성이 경찰에 스토킹 관련 신고를 다섯 차례 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여성은 1년여 가까이 지속해 스토킹에 시달렸지만, 경찰은 전 남자친구인 A씨(35)에게 접근금지 등 구두 경고 조치만 내렸다.

경찰 신변보호 조치 13일만에..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2일 오전 정례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6월 26일 첫 신고를 시작으로 총 다섯 차례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 B씨는 지난 6월 26일 "짐을 가지러 왔다"는 이유로 A씨가 집을 찾아와 문 앞에 머무른다며 경찰에 처음으로 신고를 했다. 경찰은 당시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으로 경찰 입회 아래 A씨의 짐을 빼도록 조치한 뒤 지하철역까지 격리 후 경고장을 발부했다.

이후 경찰은 지난 7일 B씨의 신고를 접수하고 스마트 워치 지급과 더불어 신변보호를 시작했다. 당시 A씨는 경찰의 임의동행 요청을 거부해 강제로 조사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A씨에게 '재차 접근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구두 경고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스토킹 범죄 대응 단계는 △제지와 경고에 준하는 1단계 '응급조치' △가해자를 주거지 100m 내 접근 금지하고 전기 통신 이용 접근도 막는 '긴급 응급조치' △유치장·구치소로 보낼 수 있는 3단계 '잠정조치'로 구분된다.

그러나 A씨는 다음날인 9일 오후 1시께 B씨의 회사 앞을 찾아왔고, 경찰은 A씨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어 "귀가 시 도움을 요청하면 돕겠다"고 전했다. 이에 B씨는 귀갓길에 경찰의 동행을 요청했고 지역경찰과 담당수사관은 B씨의 집까지 동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9일 법원이 발부한 접근금지 명령에 대해 피의자를 경찰서에 출두시켜 서면으로 발부했다"며 "피해자가 같은 날 경찰에 신고한 시간은 오후 1시경으로,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 발부 시간은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가 살해한 혐의를 받는 '데이트폭력 살인사건 피의자' A씨(35). /사진=뉴스1

스마트워치 긴급신호 보냈지만
경찰은 7일부터 A씨의 신변보호 조치 후 12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 다만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 19일 오전 11시29분과 11시33분께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긴급 신고를 했지만,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소재지를 파악하진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스마트워치가 울리면 112상황실과 담당수사관, 피해자 신변보호 담당관이 소지하고 있는 공용폰에 문자로 동시 알람이 간다"며 "다만 당일 담당관이 사용하던 공용폰을 당직자가 갖고 있었고 이에 담당수사관은 문자를 보지 못했고 별도로 피해자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피해자 B씨의 첫 신고 3분 뒤 스마트워치 위치값에 따라 서울 명동에 도착했지만, B씨 주거지와 500여m떨어진 곳에 출동해 피해자를 찾지 못했다. 이후 2차 신고 8분 뒤인 11시41분께 B씨 주거지에서 흉기에 찔린 채 쓰러져 있는 B씨를 발견했다. B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같은 날 오후 1시3분께 끝내 숨졌다.

경찰은 2차 신고 이후에야 현장에 도착한 것을 두고 "1차 신고 접수 직후 출동한 남대문경찰서를 비롯해 중부경찰서에서도 사안을 파악하고, 순찰차에 지령을 내려 주거지로 가도록 조치를 한 상황이었다"며 "2차 신고 후 주거지로 출동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범행사실 인정..이르면 오늘 구속여부 결정
경찰은 A씨를 범행 다음날인 지난 20일 오후 12시40분께 대구 동대구역 인근 한 숙박업소에서 붙잡았다. A씨는 숙박업소를 나서다 경찰에 검거돼 별다른 저항없이 서울로 압송됐다.

A씨는 범행 후 B씨의 휴대전화를 챙겨 혈흔이 묻은 겉옷과 함께 인근 지하철역에 버렸다. 경찰은 이 휴대전화를 수거해 A씨와 B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할 예정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사실은 인정하는 한편 우발적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스토킹 신고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 등에 따른 보복으로 B씨를 살해했는지 여부 등도 살피고 있다.

경찰은 A씨의 신상공개와 프로파일러 투입 여부도 검토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도구 구입 경위나 행태를 봐서 계획범죄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며 "살해 동기 부분도 상당히 유추되는 부분이 있어 필요시 프로파일러를 투입하겠지만 현 시점에는 기본 사실관계 조사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해 혐의를 받는 A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검정색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A씨는 '혐의를 인정하나', '피해자 휴대폰은 왜 버렸나', '유족에게 할 말 없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빠르게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A씨에 대한 구속 여부는 이날 중 결정될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이번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스토킹범죄 대응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업무협약 체결을 위해 이날 오전 우즈베키스탄 출장길에 올라 서면을 통해 "이번 일은 경찰이 보다 정교하지 못하고 신속 철저하지 못해 국민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며 "국민의 질책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고인과 유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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