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보철물 달고도 우주에 갈 수 있다[왓칭]
머스크의 꿈은 이제 '돈많이 드는' 현실
소아암 생존자와 사업가 등의 고도 585km 3일 우주 여행
'최초의 민간인 우주 관광' 역사의 현장
“이것이 바로 신의 시야일 것이다(This must be what God sees)”.
1968년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 너머에서 ‘둥근 지구’를 목격한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 프랭크 보먼은 컴컴한 우주 가운데 푸른 지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본, 기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우주로 나갈 수 있다."
12살때부터 ‘지구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일론 머스크는 ‘민간인 우주 여행’이란 꿈을 이렇게 설명한다. 몽상은 아니다. 돈만 있으면 민간인도 우주에 갈 수 있는 시대다. 다만 어마어마할 뿐. NASA 우주여행 규정에 따르면 민간인의 우주선 교통비는 약 5800만 달러(약 685억원), 1박비용은 약 3만 5000달러(약 4135만원)다.
다큐 시리즈 ‘카운트다운 : 인스퍼레이션4 우주로 향하다’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의 ‘민간인 우주비행 프로젝트’ 전 과정을 담았다. 머스크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금융테크기업 ‘시프트4 페이먼트’의 CEO 재러드 아이잭먼이 다른 동승자 3명의 비용까지 댔다. 미션명은 ‘인스퍼레이션 4′였다.
◇소아암 생존자, 최연소 우주인이 되다
여행의 ‘전주’이자 리더인 재러드 아이잭먼은 CEO이면서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다. ‘리더십, 희망, 관용, 번영’이란 기준으로 함께 우주로 갈 동료를 선발했다.
‘리더십’ 자리엔 재러드 본인이 앉았다. ‘희망’에 간호사 헤일리 아르세노(29), ‘번영’에 지구 과학자 시안 프록터(51), ‘관용’에 데이터 엔지니어이자 이라크전 참전용사 크리스 셈브로스키(42)가 뽑혔다. 이들은 수개월간 고강도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신체적·정신적으로 무장하고 두려움을 정복했다.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은 헤일리 아르세노(29). 열살에 소아암(골육종) 진단을 받았던 그는 한쪽 다리의 성장판을 제거하고 보철물을 이식한 상태다. 언제든 예고 없이 다리 보철물이 부서질 수 있다. 이를 악물고 재활에 성공한 그는 이제 런닝머신에서 70분을 달린다.
헤일리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자신이 입원했던 세인트 주드 어린이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한 날을 꼽는다. 암을 이겨내고 꿈을 좇는 그의 존재 자체가 아이들에겐 희망이다. 재러드가 병원에 ‘희망’이란 목표에 걸맞은 인물을 부탁했을 때, 병원은 주저 없이 헤일리를 추천했다.
‘신체 조건이 완벽한 사람만 우주에 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그를 통해 근본적으로 바뀐다. 9시간 30분간 꽁꽁 언 설산인 레이니어산을 등반하는 극한의 훈련. 실수 한 번으로 체내 보철물이 부러져 여행이 취소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등정했고, 몸에 보철물을 안고 우주에 나간 최초의 인간이 됐다.
◇우주엔 정치도, 불평등도 없다
고도 585km에서 지구 궤도를 돌기 위해선 시속 2만 8000km, 음속의 약 25배 속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발사와 대기권 재진입 순간엔 인간의 몸으로 견디기 힘든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엔 일반인의 몸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발사 과정을 담은 5회차까지 모두 보고 나면, 머스크와 재러드가 말하는 이 여행의 핵심 목표,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가 시리즈 제목으로도 더 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는 걸 알게 된다. 영감은 희망이나 기대감을 넘어 추진력과 용기, 불씨, 에너지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다.
역대 우주비행선 중 가장 큰 창문을 통해 보는 광활한 우주가 시리즈의 큰 볼거리 중 하나다 . 지름 46인치(116.84cm), 높이 18인치(45.72cm)의 거대한 큐폴라(cupola). 다큐멘터리는 여행자들이 이 창을 통해 보는 푸른 지구의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지구를 우주에서 보면 국가도 국경도 정치도 불평등도 없다. 그저 땅과 사막, 산맥, 밀림, 바다가 보인다. 스페이스X 관계자는 말한다. “이 승무원들은 다시는 세상을 예전처럼 보지 않을 거예요. 이 임무는 70억 인류에게 그 문을 열어 줄 겁니다”.
◇'최초의 전원 민간인 우주여행’에 도전하다
미션명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영감)’은 이 탐험의 목적 그 자체다. 일론머스크의 말처럼 이들의 도전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민간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우주로 향하는 꿈을 꾸게 한다.
일론 머스크에게 ‘전기차’는 현실이고, ‘스페이스X’는 꿈이었다. 이제 그 꿈은 ‘2026년 화성 유인 왕복 우주선 스타십 발사’에 이어 ‘2050년 화성으로 100만명 이주’까지 이어진다. 그의 몽상은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주여행자 4명을 통해 머스크의 꿈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스퍼레이션4′의 미션은 ‘크루 드래건’을 타고 고도 585㎞까지 날아올라 3일간 지구 궤도를 돌고 다시 대서양에 무사히 안착하는 것. 이 고도는 국제 우주정거장(420km), 허블 우주망원경(540km)보다 높다. 우주비행사 한 명 없이도 21세기 그 어느 우주인보다 높은 곳에 도달한다. 한계를 뛰어넘어 화성을 향한 가능성과 영감을 보여주는 것이 이 탐험의 본질이었다.
[연관 기사] 민간인 4명 태운 스페이스X, 지구로 귀환… 우주관광 시대 열었다
◇”죽어가는 지구나 구하라!” 머스크 반응은?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머스크에게 묻는다. “억만장자의 우주관광이라는 비난도 상당하다. 지구에도 해결할 문제가 많은데 왜 지구 밖에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쓰나?” 최근 일론 머스크가 전 세계 1위 부자로 등극했다는 소식에 데이비드 비즐리 UN 세계식량계획 사무총장도 “머스크 재산의 2% 60억 달러면 전 세계 4200만 기아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자원의 대부분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99% 이상의 자본이 지구 문제 해결에 사용된다”며 “하지만 1%, 혹은 그 미만의 자본은 우리 삶을 지구 밖의 문제로 확장하는 데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다행성 종족이 된다고 상상하면 얼마나 고무적인가요? 문제만 생각하며 산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의 말에 묘하게 설득된다.
지난해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로 에미상 최우수상을 받으며 스포츠 다큐의 새 페이지를 쓴 제이슨 헤어가 감독을 맡았다. 4명의 여행자를 중심으로 선발과 고된 훈련 과정, 비행, 이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심경까지 세세하게 담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기술에 대한 신뢰가 이들을 무한히 꿈꾸게 한다. 목숨 건 탐험에 행복해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현실의 고민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개요 다큐멘터리 l 2021 l 미국 l 5회·회당 39~68분
등급 전체관람가
특징 평범한 사람도 우주를 꿈꾸게 한다
평점 로튼토마토🍅 팝콘지수 100%, IMDb⭐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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