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은 '홍준표의 인기'를 어떻게 끌어올렸나

김동인 기자 2021. 11. 22. 08: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에 대한 2030의 높은 지지는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여기에 '인터넷 밈'도 큰 역할을 했다. 처음엔 '놀이'였다가 '응원'으로 바뀐 듯하다.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하게 밈으로 확산되는 인물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선 홍준표 의원이다.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캠프는 기상천외한 캠페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캠페인의 이름은 ‘밈(Meme) 2020’. 인터넷 밈을 만드는 데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바이럴 마케팅(입소문)을 노린 전략이다.

마이클 블룸버그가 누구인가. 역사상 가장 부유한 대선 경선 후보이자, 미국 자본시장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다. 경선 당시 나이는 78세, 젊은 층에게는 그저 ‘돈 많은 전직 뉴욕 시장’으로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블룸버그 캠프는 이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했다. 가령 블룸버그가 270만 팔로어를 가진 인플루언서에게 “내 밈(meme)을 만들어주면 돈을 주겠다”라고 보낸 메시지를 캡처해 공유하는 식이다. 실제로 이런 메신저 대화는 모두 입소문을 위해 허구로 만든 것이지만, 이런 밈을 통해 블룸버그는 ‘황당할 정도로 돈이 많아 웃긴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민주주의를 돈으로 사려는 행태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밈이 동시대 인터넷 의사소통의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는 걸 드러낸 사례였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2021년 현재,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하게 밈으로 확산되는 인물이 바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2위로 탈락한 홍준표 의원이다. 홍 의원이 막판까지 윤석열 후보의 대항마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홍준표라는 인물을 활용한 인터넷 밈의 영향이 컸다. 블룸버그처럼 억지로 돈을 풀지도, 인터넷에 어마어마한 홍보 자원을 투입하지도 않았지만, 반페미니즘 성향의 정치 고관여층 집단은 그를 활용한 밈을 온라인에 자발적으로 살포했다.

밈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밈은 그 자체로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메시지다. 야권에서 불었던 ‘홍준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준표라는 인물을 활용한 ‘밈’이 확산된 군집과, 이 군집이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되짚어야 한다. 홍준표 의원과 관련된 밈 가운데 유명한 것이 ‘무야홍’ ‘무대홍’ 같은 구호다. 무야홍은 ‘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의 줄임말이고, 여기서 파생된 말이 ‘무조건 대통령은 홍준표’의 줄임말인 무대홍이다. ‘무야홍’이라는 단어는 2021년 상반기에 유행한 ‘무야호’라는 밈(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한 장면)이 변주된 결과다.

실제 국민의힘 경선 여론조사에서 세대·지역·성별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홍준표 의원이 유독 2030 남성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서 윤석열 후보와 큰 격차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홍 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1996년 이후 태어난 세대 중 꽤 많은 이가 ‘무야홍’을 적극 설파한 셈이다.

왜 지금 홍준표인가? 홍준표 의원을 활용한 밈은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인터넷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회자되기 시작했다. 트위치 플랫폼(아마존에서 운영하는 라이브 방송 앱)에는 시청자로부터 기부(도네이션)를 받는 조건으로 기부자가 보내는 영상을 자신의 방송(보통 화면 하단에 작은 크기로)에 송출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걸 ‘영상 도네이션’이라고 부르는데, 기부 금액에 따라 짧게는 몇 초, 길게는 십수 초 동안 등장한다.

지난해 일부 시청자들이 스트리머를 골탕 먹이기 위해 정치 영상이 섞인 ‘도네이션용 짧은 영상’을 보낸 것이 홍준표 밈 확산의 발단이었다. 가령 치킨 먹방을 하던 중, 시청자가 ‘영상 도네이션’을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7초짜리 영상인데 처음에는 애국가가 흘러나오다가 갑자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10초짜리 애니메이션 영상이 흘러나오다 마지막 2초 동안에는 홍준표 의원의 2017년 대선 로고송이 나오는 식이다. 해당 방송을 진행하던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이 보낸 영상에 화들짝 놀라는데,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일종의 놀이로 작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7년 대선 경선 연설,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 발언, 북한 열병식, 히틀러 사진, ISIS 영상까지 갖가지 ‘영상 도네이션’이 스트리머를 골탕 먹인다.

이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영상합성 요소’가 바로 홍준표 의원의 2017년 대선 로고송이었다. 4년이 지난 선거 로고송의 조회수가 폭증(11월11일 현재 93만여 회)했고,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이 홍준표 의원의 과거 막말 영상까지 사람들을 이끌었다.

이준석 대표 선출 이후 늘어난 ‘홍준표 밈’

올해 상반기까지 이른바 ‘홍준표 밈’은 서브컬처에서 일어나던 찻잔 속 태풍에 가까웠다. 그런데 6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결과 이준석 대표가 선출되면서 덩달아 홍준표 밈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홍 의원은 이준석 당대표 체제에서 곧바로 복당하며 대권 도전에 시동을 걸었는데, 젊은 당대표 등장에 고무된 2030 남성 보수 유권자 사이에서 ‘놀이’가 ‘응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 사이에서 홍준표 의원은 점차 ‘할 말 하는 캐릭터’ ‘솔직하고 재미있는 정치인’으로 언급되었다. 무엇보다 ‘여성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페미니즘에 대해 쓴소리한다’는 반페미니즘 기반 평가가 홍준표 의원에 대한 집단 내 호감도를 높였다.

반페미니즘 정서와 더불어 밈으로 대표되는 ‘재미’가 결합되며 추동력을 얻었다. 반페미니즘 정서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또 다른 경선 후보, 유승민 전 의원과 대조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유 전 의원은 홍준표 의원보다 더 적극적이고 세밀하게 반페미니즘 정서를 공략하려 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가장 먼저 공약으로 띄운 것도, 경선 막판 무고죄에 대한 이슈를 끌어올리려 한 것도 모두 유승민 전 의원이다. 오히려 홍준표 의원은 경선 초반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역할이 없다고 해서 이미 있는 부서를 폐지하는 게 옳은지는 별개로 검토해봐야” 한다며 신중론을 보인 인물이다(그러나 이후 부처 통폐합을 통해 점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단순히 반페미니즘 정책만 놓고 본다면 유 전 의원이 호응을 얻어야 했지만, 현실은 각종 밈과 과거 영상을 통해 ‘솔직함’이라는 매력이 전면에 부각된 홍준표 의원이 더 큰 수혜를 얻었다.

결국 홍준표 의원은 경선 여론조사에서 48.2%라는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여론조사 득표율이 37.93%에 그쳐 중도 확장에 대한 물음표를 지울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여론 지지율은 홍 의원에게 일종의 정치적 자산을 안겨주었다. 홍 의원의 ‘자산’은 경선이 끝난 뒤, 대선을 대비하기 위한 ‘원팀’ 구성에 복잡한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홍준표 현상’을 달리 해석한 것이 화근이었다.

윤석열 캠프 측 인사들은 선거 직후 ‘홍준표 현상’이 역선택에 의한 허상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윤희석 공보특보는 여러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민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어폐가 있다(11월5일)” “정당의 후보를 뽑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의 비지지층이 선택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결과의 왜곡이 일어났을 수 있다(11월8일)”라며 여론조사의 결과가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2030 남성 보수 유권자들은 이 같은 윤석열 캠프의 인식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연쇄적인 탈당 움직임과 탈당 인증 운동으로 이어졌다. 보수 지지층 내에서 일종의 인정투쟁이 벌어진 셈이다.

와중에 탈당 행렬이 실제보다 과대 포장되었다는 목소리도 등장한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1월9일 “탈당한 당원 수는 40명이 전부”라며 사태를 일축시키려 했다. 반면 이준석 대표는 “(당비를 납부하는) 선거인단에서만 1800명이 넘게 탈당했고, 탈당자 중 2030 비율은 75%가 넘는다”라며 김재원 최고위원과 강하게 맞부딪치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 최고위원은 다음 날인 11월10일 “실제로 탈당한 분은 3000명 정도이고, 입당한 분들이 7000명이다”라며 그래도 경선을 통해 컨벤션 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는 이 주장에 대해서도 “당비를 내는 선거인단이 아닌 일반당원 숫자를 합쳐서 (탈당자보다 입당자가) 더 많다는 주장을 한다”라며 재차 반박했다. 2030 남성 보수 유권자의 파급력과 경선 후폭풍에 대해 당 지도부가 서로 다른 관점을 보이는 셈이다.

적극적으로 밈을 전파하며 홍준표 의원을 대선후보 턱밑까지 끌어올린 2030 남성 보수 유권자는 이준석 대표에게도 정치적 자산이다.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점인 이준석 대표 입장에서 홍준표라는 인물을 통해 불어온 ‘젊은 유권자 바람’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2030 남성 보수 유권자의 표심은 어디로?

게다가 당내에서 현재 홍준표 의원에게 환호하는 이들을 추스르며 조직화를 유지시킬 수 있는 인물도 이준석 대표가 유일하다. 홍준표 의원은 대선 본선에서 한 발 물러나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함께 반페미니즘 정서를 공략했던 하태경 의원은 경선 막판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경선에서 전체 득표율 7.47%에 그쳤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저기 저들(2030 남성 보수 유권자)이 실재하는 잠재적 지지층이고, 그들을 포섭하지 않으면 선거도 어렵다’는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11월2일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부울경’ 기자회견을 마치고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의원이 외곽에서 2030 남성 보수 유권자를 조직화하는 것도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 홍준표 캠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당내 인사는 “(경선 동안) 캠프도 자신들이 왜 인기 있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인기의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대선 캠프 외곽에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캠프 입장에서는 ‘굳이 홍준표 현상을 인정하고, 그것이 자신들의 약점이라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 당내 경선 내홍을 봉합하지 않고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넉넉하게 앞설 수 있다면, 홍준표 의원이나 이준석 대표에게 권한이나 지분을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준석 대표로서는 이재명 후보가 선전할수록 자신의 역할과 권한이 커지는 형국에 놓여 있다.

인정투쟁 이후, 2030 남성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홍준표라는 선택지가 사라져 부유하는 동안, 논란이 될 만한 장면도 등장했다. 11월10일 이재명 후보는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한번 함께 읽어보시지요”라며 공유했다. 원문을 쓴 인물은 자신이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의원을 지지했다며, 그런 선택을 내리게 된 계기가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가 페미니즘 이슈에 강경한 목소리를 낸다면 얼마든지 이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내용이다.

세상이 페미니즘으로 인해 갈리고 있다는 주장을 여당 대선후보가 본인 손으로 직접 공유한 셈이다. 2030 남성 보수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되지만, 동시에 이재명 후보를 지켜보며 판단을 유보하던 2030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재명 후보의 참전으로 인해 ‘홍준표 현상’은 2030 남성 보수 유권자의 존재감을 실제보다 더 키운 계기가 되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