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남북 산림협력과 '비질런트 에이스'
기후 위기와 신냉전의 대처 방안으로 '그린 데탕트' 공론화해보자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 1분 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1월 초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개막식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한 말이다. 그는 “인류는 기후변화에 있어 오래전에 남은 시간을 다 썼다”며 “오늘날 우리가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면 내일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호소에 화답하듯 이번 회의에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거대한 빈 구멍’을 막으려는 시도는 이번 회의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군사 활동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6% 정도를 차지하는데도 군사 분야를 여전히 예외 지대로 남겨둔 것이다.
11월 초에 있었던 두 가지 풍경을 보면, 남북한의 현실도 씁쓸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차 당사국총회 정상회의에서 남북한 산림협력으로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산림의 약 28%가 황폐화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김정은 정권도 산림 복원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의 산림협력은 유력한 남북 협력 사업으로 간주되어왔고 기후변화 대처 차원에서도 그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현실은 ‘산림협력’은 요원하고 ‘군비경쟁’은 격화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를 잘 보여준 장면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글래스고에서 기후변화 대처와 남북 산림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을 때, 한국 상공에는 200여대의 군용기들이 날고 있었다. 한·미 양국이 11월1일부터 5일까지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를 실시한 것이다. 200여대가 내뿜은 온실가스의 양은 상당하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군용기들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는 한·미 정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추정은 해볼 수 있다. 미국 브라운대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 연구팀이 에너지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F-35A의 최대 연료 탑재량은 약 1만리터이고 근접항공지원기인 A-10은 약 6천리터이다. 그리고 이들 군용기가 공중 급유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 탑재 연료를 사용할 경우 탄소 배출량은 각각 27.9메트릭톤과 17.5메트릭톤으로 분석됐다.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에 동원된 군용기 200대가 대당 평균 5천리터의 연료를 사용했고 대당 탄소 배출량이 15메트릭톤이라고 가정해보자. 브라운대의 분석과 이러한 가정에 따르면, 이 훈련 기간 동안 군용기들이 배출한 탄소량은 3천메트릭톤에 이른다. 이는 1700대의 차량이 1년 동안 내뿜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나무를 심어야 이를 상쇄할 수 있을까?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30년생 소나무 한 그루가 흡수하는 탄소량은 연간 6.6㎏이다. 이에 따르면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으로 배출된 3천메트릭톤의 탄소량을 상쇄하려면 약 45만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협력’과 군사훈련을 비롯한 군비 ‘경쟁’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할수록 남북 산림협력은 더욱 요원해지기에 더 그러하다. 이는 거꾸로 군사 활동 축소가 탄소 배출 감소뿐만 아니라 남북 협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위기가 지속되는 와중에 인류 사회는 두 가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위기를 거쳐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이고, 또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첨예해지면서 또다시 지구촌에 드리우고 있는 ‘신냉전’이다. 그리고 이 둘은 분리된 것도 아니고 냉전의 덫에 갇힌 한반도 미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후변화와 신냉전의 새로운 대처 방안으로 ‘그린 데탕트’를 제안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이를 시작해보자고 호소는 까닭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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